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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학교와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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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도의문화 심포지엄 지상 캠페인도 3년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우리가 존중해야할 덕목이나 버려야할 폐습 등을 주제로 삼아 이를 미리 예고하고 토의했던 종래의 방식을 바꾸어 좀더 현실과 연관을 지어 시사성이 반영된 문제를 그때그때 택하기도 했으며 이번이 그 첫 번째임을 밝힙니다. 독후감과 희망하시는 주제에 대한 의견을 환영합니다.<편집자주>

<교육열 높기론 유례없어>
해마다 이 때가 되면 합격과 낙방의 희비쌍곡선으로 당사자는 말할 나위도 없이 여러 가정에서, 아니 사회전체가 긴장과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신학기가 되면 등록금 소동이 나고 경제계에 일종의 파동을 일으킬 지경이다. 교육열이 높기로는 세계에 그 유례가 없는 한국이다. 배워서 큰 인물이 되겠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나 그릇된 교육열은 여러 가지 폐단을 가져오고 마는 것이기 때문에 반성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사회는 인문숭상의 전통을 가졌으며 노동을 천시했었다. 물론 서양에서도 이런 경향은 있었으나 그 정도에 있어서 우리사회가 월등히 심하였다. 봉건사회에서는 교육의 기회가 매우 제한되어 있었으며 특권층의 자질들만이 향유할 수 있었다.

<해방후 교육개방이 박차>
그러다가 일제식민지교육정책으로 우민정책을 면하지 못했기 때문에 배움에 굶주렸던 한민족은 해방후 정부나 국민들은 교육에 큰 기대를 가지고 지나칠 정도의 개방정책을 채택했던 것이다. 또 교육을 받아야만 사회 경제적 지위가 향상되기 때문에 어느 사회에서나 교육을 받고자하는 것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간판을 따기 위해서 최고학부까지 진학하기를 바라는 폐단이 생기고 만 것이다. 실력이야 있고 없고 졸업장을 받는 것이 진학의 목적으로 돼 버린 듯한 느낌이 강하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취직이 되지 않아 다방 등에서 방황하는 고등유민이 많은가하면 막상 근대화과업에 참여할 수 있는 일꾼을 찾아보기가 힘든 현상이 생겨났다. 인문계 학생은 많지만 이공계 학생은 적어서 이러한 균형을 잃은 인력구조가 되고 만 것이다. 비교적 경영하기가 쉬운 문과계 교육에 역점을 둔 학교당국에도 죄가 있겠으나 흙이나 기름을 묻히면서 일하기를 싫어하고 신사적 직업을 택하고자하는 노동천시의 전통적 가치관에서 나온 결과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고교·대학생 비례불균형>
이와 같은 현상은 사회에 불안을 주기 마련이다. 이들은 무식대중과는 달리 사회를 비판하고 불평객이 되기 쉬우며, 세계의 여러 후진사회에서 극우분자 또는 극좌분자로 되는 일이 많으나 이들은 다 민주발전에 크게 해로운 존재들이다.
대학생과 고교학생과의 비례도 균형이 잡혀있지 않은 것 같다. 건전한 사회는 고급인력·중급인력·하급인력의 구조가 피라미드와 같이 되어있어 기술자·기술공·기능공도 일정한 비례로 돼있는 것이 좋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우선 대학에 가야만 된다는 그릇된 사회풍조 때문에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고등교육을 받고있어 고등유민이 생기고 마는 것이다.

<갈수록 학사 홍수날 판>
대학의 문호가 이렇게 널리 열려있기 때문에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천대를 받게되는 것이니, 대학진학의 풍조는 점점 강해가고 있다. 따라서 학사님들의 홍수를 만난 고용주들은 고교출신들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을 시키면서도 응모자격을 대학졸업자로 하기 때문에 대학진학을 부채질하고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고용주 측에 대해서도 별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학력에 비해서 보수가 넉넉지 못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취직 후에는 불만을 갖게되나, 고교출신들이면 만족하고 최선을 다해서 근무할 것이지만…. 물론 대학출신 이야만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더구나 앞으로는 대학학력을 가져야만 가능한 새로운 직종이 많이 생겨날 것도 거의 틀림없는 사실이다.

<과외로 건강 해치기까지>
이와 같이 그릇된 교육열과 사회적 풍조 때문에 학부모의 학비부담은 매우 큰 것이며, 경쟁에 이기기 위한 과외수업비는 오히려 학교에 정식으로 납부하는 금액보다 더 많은 경우도 적지 않다. 소위 일류중학교에 입학하기위해서 어린 국민학교 학생들이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과외수업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도 결코 적은 것이 아니어서 입시혁명이 단행된 후로 중학교의 평준화가 되어 한때 큰 기대를 해봤지만, 여기에도 부작용이 생겨 중학교 입학 후에 과외사업이 성행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국민학교에서까지 과외수업을 하는 색다른 경향이 머리를 들기 시작하고 있다.

<평준화에도 부작용 따라>
평준화가 되었어야할 중학교들이 실은 아직도 시설이나 교사의 질 등에 있어서 결코 고르지 못하기 때문에 정규학교에서 교육받는 것으로는 안심하지 못하고 학관에서 보충수업을 받는 경향이 해를 거듭함에 따라 심해지고 있으니, 이것 또한 학부모에게 지워지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고교생들의 과외수업은 더욱 심하며, 가정교사 없이는 공부 못하는 것으로 착각하기까지에 이르렀고, 가정교사의 선택에 있어서도 대학생이 아니라 고교교사 심지어는 대학교수를 모시는 경향까지 생기기 시작하였다 한다. 가정교사의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학부모의 부담은 자연 무거워지고 있다. 정상적 교육이 이루어질 날이 오히려 점점 멀어져 가는 느낌조차 있다.

<무턱대고 일류만 찾아>
대학교육은 높은 교양을 위해서도 받는 것이지만 최고의 직업교육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자기의 적성에 맞는 학문을 하여야함에도 불구하고 소위 일류대학에 들여놓고 보자는 생각으로 자기에게는 적당치 않은 과에라도 우선 입학하고 입학 후에 전과하려는 생각으로 작전을 짜는 학생이 많이 있다. 그러나 전과의 문호는 매우 좁기 때문에 본인의 실망은 물론이려니와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그릇된 경향은 우리사회뿐만이 아니지만, 학벌을 필요 이상으로 중히 여기는 풍토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일류대학에 합격할 자신이 없으면 이류대학의 자기 적성에 맞는 과에서 수학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좋은 대학에서 수학하는 것 자체가 좋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고, 무리하게 간판만을 노리는 폐단이 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에서도 인물을 평가할 때 그의 출신교를 가지고 기준을 삼을 것이 아니라 본인의 실력으로 저울질하여야 할 것이다.

<특색 있는 학원 건설해야>
또 하나 중요한 점은 특색 있는 학원을 건설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학문은 A대학에 가는 것이 좋고, 저 학문을 하자면 B대학에 가는 것이 좋겠다는 식으로 대학들이 각각 특색이 있어야만 학벌의 폐습이 지양되고 이류 병도 치료될 것으로 본다. 교육의 묘미는 평준화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다양성에 있음을 학교당국이나 일반사회에서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능력본위로 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듯하다. 혈연관계·동창관계. 지역적 고려·학벌 등이 인사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세평이 있다는 것은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니다. 전근대적 사회풍토를 탈피하지 못한 징조이다. 이러한 현상은 젊은 세대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으며 근자에는 오히려 더욱 심해져 가는 경향까지 있다.

<사회교육 필요성도 절실>
교육계에서 아무리 성스럽고 착한 일을 가르치고 지도한다해도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듣고 느끼는 젊은 세대들은 이상보다는 현실과 타협하는 경향이 짙어가고 있음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풍조는 민주사회발전에 큰 암적 존재가 되고있는 것이다. 미성년자 입장불허라는 영화관에도 대부분의 관람객이 중고학생이고, TV의 프로그램도 결코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는 것들이 공공연히 방송되고 있으니 판단력이 충분히 발달되지 않은 반면에 감수성이 강하고 모방성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여러 가지 악영향을 주고있음을 기성세대들이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정화 없이는 바람직한 인간형성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사회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다. 올바른 가치관, 건전한 인생관의 확립이 성인사회에 이루어져야만 후진들이 구김살 없이 성장 발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릇된 교육열을 기화로 교육계의 부패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각종 잡부금을 위시해서 본 수업보다도 과외수업에 정력을 더 쏟는 교육자답지 못한 행위, 부유층·권력층·학부모에 대한 아부, 빈곤한 학생에 대한 천대 등 일일이 듣기에도 부끄럽기만 하다.

<졸업하면 서적과는 담싸>
또 지식의 폭발시대에 살면서도 졸업 후에는 서적을 가까이 하기를 싫어하는 일반사회인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것이 교원들의 실태이고 보면 어떻게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단 말인가? 박봉에 허덕이면서 연수를 논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평할지도 모르지만 대우개선을 부르짖음과 동시에, 아니 그보다 먼저 교육자 자신의 맹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우리 자녀들을 정성껏 육성해주는 스승에게 응분의 보답을 잊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 학부모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일제시대에 공부한 기성세대들에게는 앞길이 막혀있어 좌절감도 많았으나 엘리트로서의 프라이드와 포부가 있어 교과서 이외의 독서도 많이 했었다.

<요령껏 학점만 따는 풍조>
그러나 요즘의 학생들은 독서하는 경향이 별로 없으며, 최소한의 노력으로 요령껏 학점이나 따면 된다는 매우 현실적인 경향이 있으며, 약은 처세술에 능한 학생이 많음은 매우 한심스러운 일이다. 폭넓은 교양과 호연지기가 아쉽다.
요즘 학생들은 입시경쟁에 이기려고 수험공부는 많이 하기 때문에 토막지식은 많이 알고있다고 볼 수 있으나, 국민교육헌장에서 강조하는 창의성은 별로 발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해도 지나친 편견은 아닐 것이다. 한편 도의 면에 있어서는 한심스럽기 비할 바 없다는 것이 사회의 정평이다. 따라서 학교에서 도의교육에 좀더 큰 비중을 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된다. 물론 도의적인 행위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역사적·사회적 조건이 다른 외국의 풍습을 무비판적으로 모방하는 것을 삼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요즘의 교원이나 학생들이 그릇된 방향으로만 가고있는 것은 결코 아니고 전보다 몇 배나 더 연구하고 공부하며 여러 가지 건전한 점이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러기 때문에 학원이나 사회에서 신상필벌이 있어야 하겠다. 귀속사회의 폐습을 지양하고 업적위주의 근대사회를 건설하려면 사회와 학교와는 보다 긴밀한 유대를 가져야 하겠으며 교육을 국가의 백년대계라고 일컬어 내려온 진의를 재확인할 필요성이 지금과 같이 긴박한 때도 없을 것이다. 그릇된 교육열을 올바른 교육열로 전환시키는 운동이 교육계 내외의 지도층에서부터 일어날 것이 화급히 요망되는 바이다.<대표집필 서명원>

<주제>=학교와 사회

<일시>=2월6일

<장소>=본사 회의실
>참석자(무순)>서명원(서울대사대교수), 박종민(동성고교교감), 노양래(창덕여중 학부형), 곽철영(서울대 문리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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