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제자는 필자>|<제5화>「동양 극장」시절 (20)|박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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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의 오늘>
오늘로 「동양 극장」이야기를 끝내면서 매듭 짓고 싶은 것은 우리의 연극계 현황이다. 과거 새로운 연극으로서의 신파극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부분의 연극이 있었다. 연극을 대별해서 비극과 희극이라 하는 것은 연극원론에서 하는 이론이요, 신연극 이후 우리가 비극 희극이라 일컫는 것에는 뜻밖에도 가정극·사회극·군사극·인정극·연애극…이니 하는 관사를 붙였었다. 그 중에는 우리 나름의 특이한 화류극이란 것도 있었다.
연로한 분들은 다 알겠지만 「화류」란 말은 매력 있고 흐뭇한 어휘이다. 한 30∼40년전 만해도 화류계란 말이 항용 씌었는데, 지금은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다. 즉 기생 사회 또는 그와 동류의 주와 색이 곁들인 유흥 또는 향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층을 화류계라고 했다. 좀 지저분한 얘기지만 「성병」을 화류병이라고 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형태의 신파극 시대에 그 연극의 신분을 밝히기 위해서 본 제목 위에 설명적인 관사를 더 붙이는 것이지만, 가령 『사람에 속고…』는 화류극에 속하는 것이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갈등은 가정 비극이다.
이러한 시대와 과정을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신극이니, 고등 신파니, 중간극이니, 경향극이니, 어용극이니 하는 여러 가지 종류와 목명을 거쳐서 이제 그 모두를 통합하는 『연극이라는 명칭을 지니는데 63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연극의 형태가 우리의 「전통」이냐 「정통」이냐 하고 묻는다면 누구나 다 아니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연극라고 하면 구연극을 전제하는 말이 되겠는데, 그 구연극을 나는 구태여 「산대 도감 놀이나」「봉산 탈춤」이나 기타 무당굿 놀이에 연결 짓고 싶지 않다.
내가 언젠가 문학 잡지에 「비교 연극학」이란 글을 쓴 일이 있지만, 하옇든 우리가 하고 있는 지금의 연극은 전혀 우리의 핏줄을 이어 받은 정통적인게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정통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서양식 연극을 하면서 큰소리치는 어리석은 백성이다.
요새는 동서의 문화·문물이 왕성하게 교류·교역되는 세대지만, 그럼에도 그 나라 그 민족마다 고유하고 전통적인 것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시대와 세대가 바뀌어도 보유·보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한 소임으로 우리도 문화재 관리국이라는 것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연극은 왜 이렇게 사생아가 되어 국적도 민적도 주민등록증도 없는 기형아로서 행세하고 큰소리 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지금 한국 연극 협회의 집계한 바에 의하면 극단이 20개나 되고 거기에 달린 사람이 2백명이나 되며 또 무소속이 수 10명이니 연극하는 사람은 수백명을 헤아린다. 이 사람들이 다 연극만을 지키고 바랄 수 없어 그중 재치 있는 사람은 라디오나 텔리비젼에서 밥을 먹고 있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을 끌어내어 치명적인 출혈을 무릅쓰고 공연을 해 보는 극단 운영자와 지도자가 있음은 참으로 고맙고 미안하고 안타까울 정도이다. 그러나 내가 정말 남기고 싶은 말은 피를 뽑아가며 연극에의 열정을 쏟는 것도 좋으나, 장차 한국의 연극이 가야할 방향을 정해서 그 길로 지금 가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지금 연극을 할 수 있는 극장은 서울에만 있는 국립 극장과 「드라머·센터」뿐이다. 지난 연말 국립 극장의 연극 공연 신청 수는 12개 극단인데, 비어 있는 날짜가 40일 밖에 없는데다가 최소한 5일씩은 해야하지 않느냐 해서 제비를 뽑아 8개 극단으로 정한 일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일이요, 공연을 가지고 싶어도 할 극장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아니 그대들이 하고 있는 그 연극이 우리 연극이냐 묻고 싶다. 무대에 형상화하는 그 방식이 이미 신연극부터 우리 것이 아님은 거듭 말할 나위도 없지 않은가.
비록 그 형식으로나마 우리 것을 하자는 말이다. 체육회에 돈 많이 준다고 시샘만 할 것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바로 이게 우리 연극이라고 자랑할 만한 것을 만들란 말이다.
흔히 『연극 선배의 유산이 없다. 한국의 오늘날 연극은 자수 성가한 것이다』하는 생각은 심히 유감스럽고 앞날의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위태로운 생각이다. 한국 연극의 새로운 전통을 위해서 방향을 잡고 또 방향 감각을 되찾아야겠다. <끝> ※제6화는 이형석씨의 「창군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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