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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외원과 외교|<뉴요크·타임스=벤저민·웰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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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닉슨 대통령의 취임이래 일본 및 구주 공동 시장과의 경제 관계는 훨씬 비뚤어져 버렸다. 달러의 금태환력 때문에 미국이 쩔쩔매었는가 하면 직물류 수입 제한 문제로 무역 전쟁이 애견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태는 닉슨 행정부가 외교·경제 정책을 포괄적으로 다루지 못했던데 기인 한다.
고율의 관세·기축 통화의 불안정·보호 무역의 득세 등 세계 경제의 문젯점들은 미국이나 닉슨 정부만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자유 진영의 각국 정부는 이런 문제가 미국의 「리더쉽」없이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있다.
즉 미국이 국내 경제 정책과 대외 정책을 효율적으로 조화시킬 때 활로가 발견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닉슨 역시 이 같은 주장에 동의했던 것 같다. 각료급의 인사로 국제 경제 정책 협의회를 조직, 스스로 의장직을 맡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이 협의회는 후진국에 대한 군·경 원조, 무역 및 국제 통화, 국제 금융 및 대외 투자 등 광범한 경제 분야의 문제를 외교 정책과의 장관 관계 하에서 조정하는 것을 주임무로 삼았다.

<서독 대소 접근에 불안감>
이 기구가 설립되기 전에는 국제 경제 문제와 대외 정책을 이어 줄만한 제도상의 이음쇠가 없었다. 문제가 발생하면 각 행정, 부처가 자기 부에 유리하도록 안을 내놓았으며 부처간의 싸움이 쉽사리 결판나지 않으면 백악관 쪽에서 적당히 조정한다는 식이었다. 따라서 국제 경제 정책 협의회의 발족은 단순한 기구의 신설이 아니라 달러와 외교를 한층 단단하게 묶어놓은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훌륭한 제도상의 이음쇠도 닉슨이 당면했던 갖가지 난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했던 듯 싶다. 서구 제국과 일본에 해외 시장은 물론 국내 시장까지 침식당하자 미국 역시 자유 무역 정책의 부분적 수정을 검토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무역 정책의 수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외교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있다.
예컨대 구주 공동 시장과 무역 전쟁을 벌인다면 그 가맹국들은 서독의 「오스트·폴리티크」와 비슷한 노선을 모색, 대소 접근을 꾀할 것이다. 비록 무역 전쟁은 없었지만 브란트 수상의 대소 접근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가 이미 약간의 불안감을 표시한바 있다. 그리고 닉슨 정부의 고위 관리들 중에는 동·서구의 경제적 유대 강화가 정치적 친화로 발견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미국의 고립화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대일 정책의 경우, 경제 문제는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직물류 수출의 자발적 규제와 자본의 자유화라는 일동 압력을 가함으로써 사또 정부에 심각한 난제를 안겨준 것이다. 미국이 만약 이 두 가지 조건을 끝까지 관철하려 한다면 일본의 친선 태도에도 금이 갈지 모른다. 적어도 중공과의 경제적 유대 강화는 필연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게 워싱턴의 지배적 견해이다. 이와 같은 연쇄 반응적 상호 관계에도 불구하고 닉슨 정부의 관리들은 보호주의와 자유주의의 논쟁을 거듭해 왔다. 논쟁은 기업가들에게까지 파급되었으며 마침내는 노조가 보호무역의 절대 지지를 내세우는 사태로 발전했다.
이러한 경향을 더욱 부채질한 것이 의회였다. 행정부가 선사 용단을 내렸다해도 「로비 이스트」와 기업가들에 약한 의회가 수입 제한을 입법화하면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의 대외 정책은 효율적인 중앙 통제가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직권의한 조정에 한계 느껴>
미국의 대외 정책이 어떤 과정을 밟아 결정되는가를 살펴봐도 이 점은 분명 해진다. 경제협정의 채결을 포함한 일체의 외교 업무는 원칙적으로 국무성의 소관이다.
그러나 국무성은 문제의 성질에 따라 국방·재무·노무·상무성 등으로부터 전문적인 견해를 들어야하며 이 견해가 바로 정책의 기초로 된다. 간혹 국무성 측이 전문적 견해의 청취를 기피하러 들기도 하지만 성공한 예는 극히 드물다.
닉슨이 취임한 뒤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국무성의 상대적 약화를 의미하는 이러한 경향이 긴 안목의 외교 정책 수립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신설된 국제 경제 정책 협의회가 현재까지 전혀 목적했던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닉슨 대통령은 자신의 권한을 활용하는데서 이러한 문제의 돌파구를 찾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닉슨의 대통령 직권을 이용한 조정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그 가장 좋은 예가 국제 기축 통화로서의 달러 안정 문제이다. 미국의 장기적 국제 수지 불균형이 초래한 달러 위기는 그 개선책을 놓고 닉슨 취임 초부터 똑 같은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대외 투자 금지 및 보호무역주의로 대표되는 극단적 고립주의와 전통적인 자유무역주의간의 해묵은 대립이 그것이다.

<국무·국방성간 곧잘 마찰>
닉슨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해 명쾌한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직물류에 대해서는 일본과 구주 공동 시 제국의 무역 자유화 주장을 묵살하는가 하면 반대로 달러의 유입을 위해서 자본 자유화를 강요했다. 자유주의라는 명분이 무역과 자본 거래에서 각기 다른 얼굴로 나타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더라도 욕심 사나운 일에 틀림없는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의 직권이 외교 정책의 효율적인 수행을 저해하는데 사용된 예가 적지 않게 보였다. 국무성이 구상한 동구와의 교역 확대를 지연시킨 것은 그 전형적 예이다. 닉슨과 키신저는 이와 같은 억제 조치가 동구권의 대미 접근을 더욱 촉진시킬 것으로 기대하나 국무성은 물론 신설된 「협의회」도 그 반대 결과가 나을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끝>
「시리즈」차례
①국무성의 약화
②백악관의「친정」
③국방성의 입김
④정보 기관의 난맥상
⑤외원과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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