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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정보 기관의 난맥상|뉴요크·타임스=벤저민·웰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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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968년1월23일 새벽.
한창 단잠에 취해 있던 존슨 대통령은 정보 수집함 「푸에블로」호가 북괴에 납치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보고를 받자 순간적으로 그는 『북괴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리려고 결심했다.
바야흐로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이 터질 것 같은 숨막힌 순간이었다.
그때, 존슨 대통령의 이 결심을 발표 일보 전에서 막아버린 사람이 다름 아닌 「리처드·헬름즈」 CIA (중앙 정보국) 국장.
이날 열린 긴급 안보 회의에서 헬름즈 국장은 CIA의 조사 기록을 토대로 북괴가 4백50대의 제트기와 15기의 지대공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음을 지적, 『공격』 무모성을 역설했다.
헬름즈의 이 보고에는 존슨도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비단 「푸에블로」호 사건 때만이 아니라 CIA가 미국의 대외 정책 수립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던 일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지도 체계 흩어져 월권도>
1956년부터 60년까지 소련 상공에 U2기를 띄웠던 일, 인지 반도의 공산군 점령지에 수많은 첩보원들을 들여보내고 데려오는 일, 62년 케네디 대통령의 명령에 의해 라오스에서 3만5천명의 반공 「메오」족을 훈련시키고 양성하던 일 등등에서부터 최근의 중동 휴전 성립, 「손타이」 미군 포로 구출 작전 등은 모두가 CIA가 간여했던 사건.
이와 같이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의 대외 정책 수립에 큰 영향력을 미쳤던 CIA를 비롯한 몇몇 정보 기관들이 닉슨 대통령에 의해 대폭적인 수술을 받게될 것으로 보여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있다.
닉슨 대통령은 최근 그의 보좌관들에게 CIA를 포함한 미국의 각 정보 기관들이 쓰고 있는 예산의 집행 상황과 이들 기관에 대한 인력 감사를 실시하여 금년 중으로 보고서를 제출토록 지시했다.
이 특별 지시는 이들이 사용하는 막대한 예산과 인력 규모에 비해 그들이 풀어놓는 정보보따리의 내용이 너무나 빈약한데 있는 듯하다.
사실 각급 정보 기관들이 행정부의 정책 수립에 많은 참고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 공헌도가 너무 낮다는데서 닉슨의 불만을 산 것으로 보인다.
더우기 이 분야에 대한 일사불란한 지도 체계가 확립돼 있지 않기 때문에 각 기관들이 서로 중복된 활동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그 활동 범위를 벗어난 업무에 손을 댄다거나 쓸데없는 일을 만들어 미국의 대외 위신을 추락시키는 사례가 종종 일어난 것이 닉슨의 이번 결심을 더욱 부채질한 것 같다.
현행 미국의 행정직 제상 정보 업무는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국가 안보 회의에서 총괄토록 되어 있다.
그러나 「헨리·키신저」안보 담당 보좌관, 헬름즈 CIA 국장, 미첼 법무장관, 「데이비드·패커드」 국방차관, 「알렉시스·존슨」 국무차관 등 4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이 회의는 기본 정책을 결정하는 곳이고 정보 활동에 대한 실무는 그 밑에 있는 미국 정보 위원회에서 담당하도록 되어 있다.

<닉슨 용단으로 기관 정리>
1956년 아이젠하워의 비밀 특명에 의해 창설된 이 기구는 헬름즈 CIA 국장을 위원장으로 각급 정보 기관의 수뇌급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
미국 정보 활동의 핵심체라고 볼 수 있는 이 기구의 구성 멤버를 보면 CIA 국장을 필두로 「윌리엄·설리번」 FBI 부국장, 「노엘·케일러」 국가 안보국장 (해군 중장), 국방성 정보국장 「도널드·버네트」중장, CIA 부국장 커쉬맨 중장, 「레이·클라인」국무성 정보국장, 「하워드·브라운」미 원자력 위원회 부위원장 등 행정 각부의 정보 책임자들.
이중 FBI를 제외한 각급 정보 기관에 고용돼 있는 요원 수는 20만명이 넘고 그들이 1년 동안 쓰는 예산만도 무려 50억 달러 (약 1조5천억원).
그러나 이러한 막대한 예산과 인원을 동원하는 정보 활동이지만 이들을 지휘, 감독하는 소관 부처가 국무성·국방상·법무상·원자력 위원회 등으로 갈라져 있어 조직적이고 효과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닉슨의 새로운 조치도 이러한 정보 기관들의 난맥상을 정리하자는데 그 의도가 있는 듯 싶다.
여기에 덧붙여 닉슨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들, 특히 키신저가 이끄는 1백10명의 백악관 참모들이 CIA 및 기타 기관들의 활동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이번 조치의 한 이유가 된 듯하다.
2차 대전 중 그 자신이 정보 담당자로 군에서 복무한 일이 있는 키신저는 소련 문제와 군축 문제에 관한 한 그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만한 지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키신저는 어디까지나 정책 수립가이지 정보 실무자가 아니기 때문에 닉슨 대통령이 정보 업무의 주무청이나 다름없는 CIA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특히 현재의 헬름즈 CIA 국장은 닉슨 대통령 및 「로저즈」 국무·「레어드」 국방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로 전해지고 있다.
1966년 존슨에 의해 국장으로 임명된 헬름즈는 정치적 제스처가 없고 중립적인 인물로 호감을 사고 있다.

<타국보다 우수하다는 평도>
다만 그의 이와 같은 태도가 때로 레어드와 「풀브라이트」 상원 의원간의 논쟁에 휘말려 두 사람이 모두 헬름즈의 증언을 각기 아전인수격으로 적용하려들기 때문에 그를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만든 경우도 종종 있어 왔다. 한편 닉슨의 이번 조치는 각 부처간에 서로 자기 부처의 권한을 헬름즈에게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야기 시켰다. 그래서 로저즈 국무·레어드 국방 등은 오히려 정보 업무의 적극적 활동을 지시했는가 하면 매주 열리는 헬름즈 주재하의 정보 위원회에도 보다 거물급을 파견하려 하고 있다.
하여간 닉슨의 새로운 지시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미지수이지만 설혹 수술이 단행된다해도 그것은 지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그치게될 것으로 업저버들은 보고 있다.
이것은 소련의 미사일 기지 탐지, 핵 잠수함의 배치, 공군력의 규모 등을 샅샅이 파헤쳐 군축 회담에 참석하는 미국 대표들에게 기초 자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월남전 수행에 필요한 전술 정보를 제공하고 중공·동구 등 공산국가들에 대한 전략 정보 등을 끊임없이 워싱턴으로 보고하고 있는 각급 정보 기관들의 활동이 없다면 미국의 대외 정책 수립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
따라서 비록 지휘 계통의 난맥상과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는 있지만 미국의 정보 기관이 소련이나 그 밖의 국가들의 그것에 비하면 훨씬 우수하다는 평이다.
「시리즈 차례」
①국무성의 약화
②백악관의 친정
③국방성의 입김
④정보 기관의 난맥상
⑤외원과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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