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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터 직접 가보니…] 벌판 오가는 '현대' 트럭 눈길

중앙일보

입력

"우리가 개성공업지구개발에 거는 기대가 아주 큽니다. 인차(곧) 남북이 힘을 합치면 잘 될 겁니다. "

지난 23일 개성시 만월대에서 만난 50대의 유적 관리인은 요즘 개성 주민들의 생산 의욕이 부쩍 높아졌다며 개성공단에 기대감을 표시했다.

송악산 줄기와 진봉산에 둘러싸였고, 중심부로 사천강이 흐르는 개성공단 예정지의 첫 인상은 적막함 그 자체였다. 기존 주택이 거의 없고 아무런 표지판도 없어 아직은 허허벌판이었다.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 주택 드물고 표지판도 없어

남측 역사학자와 기자 일행을 태운 버스가 평양을 출발한 것은 오전 8시.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따라 2시간30분쯤 달리자 개성 시가지에 도착했고, 곧바로 개성공단 부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틀 전 남쪽의 개성공단 사전 답사단이 이곳을 둘러보았지만 국내 언론에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임진강의 지류인 사천강을 가로지르는 '평화의 다리'에 서자 오른쪽으로 진봉산이 멀리 보였다. 북방한계선에서 1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지점이다. 진봉산 바로 앞쪽으로 1단계로 조성될 4백만평(총공단조성 예정지는 8백만평) 규모의 개성공단 예정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북한 내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대형 덤프트럭이 진봉산 쪽으로 오고가는 것이 이채로웠다.

여기서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봉동역이다. 남쪽 대표단을 안내하기 위해 나온 개성시 인민위원회 정영철(44)대외사업국장은 "개성 특구는 공업.상업.금융.관광 중심 지구로 개발될 예정"이라며 "남측과 자재를 교류할 인수지점만 합의되면 우리는 언제든지 착공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멀리 덤프트럭들이 자재를 운반하고 있는 공사현장이 보였다. 'HYUNDAI'(현대) 마크가 새겨진 화물자동차였다. 정국장은 "봉동역 인근에는 자갈 등 경의선 철도 연결을 위한 물자들이 쌓여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취재진의 계속되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평화의 다리 남쪽의 건설현장에는 접근이 불허됐다. 군사분계선이 코앞이라 군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 주민들, 신도시 소식 몰라

평화의 다리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왼쪽에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살게 될 신도시가 조성된다. 공단 예정지까지는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다.

개성시 주민들은 공단과 달리 신도시 개발에 대해서는 아직 알지 못하는 듯했다. 시내에서 만난 한 주민은 "신도시가 조성되면 개성시가 많이 발전하게 될 것 같다"고 하자 "그런가요"라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다만 관광지 수입을 늘리려는 노력만은 전에 없이 적극적이었다. 정국장은 "최근 개성 인민위원회가 관광지 입장료를 지난해 가격 조정에 맞게 대폭 인상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왕건릉에 가보니 왕릉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20달러를 내야 했다. 관광객이 오자 재빨리 이동식 판매소를 설치하고 관광 책자와 건강식품류를 파는 것도 과거에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 전기.수도 끊겨 물지게 동원

그러나 북핵 문제로 조성된 위기 상황은 제쳐놓더라도 개성공단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기 공급이 선결 과제로 보였다. 육로관광지구가 될 개성시만 놓고 보더라도 전력난이 최악의 상황이었다.

아파트 승강기가 작동하지 않아 노인들은 아예 포기하고 집 안에만 있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전기가 부족하다보니 수도 공급도 끊겨 주민들이 우물에서 물을 퍼 물지게로 나르는 장면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동행한 북측 안내원은 "공장을 돌릴 전기도 모자란 상태에서 일반 주민들까지 전기를 보내주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남쪽에서 전기를 공급해주거나 화력발전소를 지어주길 희망했다. 적대 관계의 상징이었던 판문점 지역을 물자가 오고 가는 평화의 지역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전기 문제가 관건이라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개성=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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