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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예산 새고 있다 <하> 심해지는 깔때기 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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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용직 근로자로 등록이 돼 있길래 전화로 물어보니 일을 그만뒀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계속 일을 다니는지 확인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부산시 기장군청 손수옥 통합조사관리계장은 힘 없이 이렇게 말했다. 기자가 “국립대 공무원이 어떻게 기초수급자가 될 수 있었느냐”고 캐묻자 마지못해 한 답변이었다. 부산대 직원으로 근무하며 연봉 4227만원을 받는 A씨가 5년4개월 동안 1억1142만원의 기초생계비를 받다가 지난 7월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그는 2007년 12월 부산대에 취직한 이후에도 계속 정부 지원금을 받았다. 2011년 국세청 소득자료에서 취직 사실이 드러나 군청 직원이 전화로 확인하자 A씨는 “잠깐 일하다 그만뒀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사실관계(퇴직)확인서를 보냈다. 군청의 추가 확인이 필요했으나 그러질 못했다.

기초노령연금 부정수령 4만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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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씨의 복지 예산 빼먹기는 고난도 수법이 아니다. 약간의 편법이면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저소득층 복지 예산이 여기저기서 새고 있다. 지난해만 기초수급자 7392건, 기초노령연금 4만8989건의 부정 수령이 적발됐다.

 부정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관리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정부가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사회복지통합관리망(사통망)이라는 그물망을 짰지만 이것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게 있다. 사통망의 소득자료는 1년 반~2년 전 것이다. 부산대 A씨의 경우도 이 허점을 활용했다. 사통망에는 중앙부처와 건보공단 등 42개 기관의 소득·재산 등의 공적자료 452종과 131개 금융기관의 금융자료가 들어 있다.

 일부 임대소득 자료는 사통망에 아예 없다. 서울 동대문구 B씨는 2011년부터 기초노령연금을 받아 왔다. 그러다 살던 집을 월세(110만원) 놓고 자식 집으로 가면서 이를 신고하지 않고 올 4월까지 연금 269만원가량을 챙겼다. 적발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국토교통부의 전·월세 거래 정보를 연계하면 되지만 아직 안 하고 있다.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1078명의 기초수급자 재산을 어떻게 상시 관리하느냐”고 말했다.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복지 예산과 대상은 KTX로 달리는데 관리인력(복지공무원)은 옛 통일호 같기 때문이다. 대구시 수성구 권종기 생활지원계장은 “복지예산은 위에서 마구 쏟아지는데 이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2008~2013년 복지대상자는 102% 증가한 반면 복지공무원은 23%밖에 늘지 않았다.

중복사업 조정, 담당자 늘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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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사업이 줄을 이으면서 업무가 폭증한다. 예를 들어 올해 무상보육이 시행되면서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청의 경우 대상자가 지난해 1만4773명에서 올해 2만6890명으로 늘었다. 16개 부처의 292개 복지사업 중 170개가 일선 지자체 창구를 통해 주민들에게 전달된다. 내년에는 기초연금이 도입되고 기초생보제가 개별급여로 전환할 예정이어서 업무가 급증할 게 뻔하다. 올 들어 복지공무원 3명이 업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었다. 경기도 성남시의 한 주민센터 공무원은 “방치된 노인 발굴 등 현장 복지를 하라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현장을 방문한 적이 없다. 앉아서 오는 민원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깔때기 해소책이 복지공무원 충원이다. 하지만 2011년부터 내년까지 7000명을 충원하기로 했으나 행정직 공무원의 재배치가 목표대로 가지 않고 있다. 복지 업무가 힘들다 보니 행정직들이 1년을 버티지 못한다. 경기도 안양시 주민센터의 한 공무원은 “복지사업의 종류가 너무 다양해서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속이려는 사람을 걸러내기가 쉽지 않다. 대구시 수성구 기초수급자가 딸과 중국 여행을 다녀왔는데도 이들의 말만 믿고 가족 관계 단절로 인정해 700만원가량의 생계비·의료비를 지급했다. 가족관계 단절 여부를 확인하려면 기초수급자 자녀 주변을 조사해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다.

 정경배 전 보건사회연구원장은 ‘사회복지사 3명의 자살 보고서’에서 “교육비 등의 업무가 쏟아지면서 창구 병목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중복사업 조정, 읍·면·동 사회복지센터 설치, 민원심사 3단계 심의회의 설치, 업무 표준화 후 직무재설계, 인력 재배치 등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장주영·김혜미·이서준·이민영 기자

◆깔때기=병에 꽂아 액체를 붓는 데 쓰는 나팔 모양의 기구. 복지재정을 늘려도 지자체 복지공무원이 부족해 혜택이 잘 가지 않는 현상을 빗댄 용어.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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