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목숨건 저지작전…수훈의 승무팀-KAL기 납북모면…동해상공의 유혈극 40여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속초발 서울행 KAL소속 F27기의 납북미수는 이강흔 기장(37)등 5명의 승무원들이 40여분동안 필사의 기지작전과 승객들의 인내로 휴전선을 넘기 2분전 극적으로 납북을 모면했다. 사제폭발물을 3개나 폭발시키면서 발악하던 범인 김상태가 최천일 공안원의 총격으로 쓰러졌고 이어 기체가 우리 땅에 불시착하게되자 승무원들과 승객들은 감격의 만세를 소리높이 외쳤다. 24일 상오 KAL특별기 편으로 서울에 도착한 승객들과 승무원들은 1만 피트 상공에서 겪은 폭발과 납북기도순간을 악몽처럼 되새겼다.
KAL소속 F27기가 65명의 승무원·승객을 싣고 서울을 향해 이륙한 것은 23일 하오1시7분. 납치범 김은 앞쪽에서 오른쪽 두 번째 창가에 앉아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김은 밤색「잠바」에 해군복 바지차림.
이때 이 기장은 강릉관제탑으로부터 1만 피트 고공계기 비행의 승낙을 받아 서울을 향해 고도를 높였다. 최 보안관은 통로를 왕래하며 승객들을 「체크」했다. 이때 김은 「스튜어디스」 최양이 갖다준 과자와 홍차를 마신 다음 슬그머니 선반에서 가방을 끌어내어 몸을 일으켰다.
곧이어 『꽝!』 폭발음이 기내를 진동시키며 기체가 크게 요동했다.
폭발물은 기체가운데 통로에 떨어져 터진 것이다.
이 폭발로 중간좌석에 있던 이병조씨(50·전 철도청차장)의 고막이 터졌고 10여명의 승객이 부상했다. 폭발지점에는 직경 20㎝쯤의 구멍이 나 지상이 훤히 내려다 보였으며 바람이 기체 안으로 마구 밀려들었다.
이때가 이륙 20분 후, 고도 1만 피트, 시속 4백50㎞로 F27기가 막 대관령을 지났을 무렵이었다. 이어 김은 조종실을 못 드나들도록 밀폐한 간막이 문에 두번째 폭발물을 투척, 간막이가 반쯤 부서져 조종실로 통하는 문이 제처졌다.
최 공안원은 뒤통수에서 번쩍 하는 섬광을 느낀 순간 엎드려 기어 기체 꽁무니로 몸을 피해 자욱한 연기 속을 돌아보았을 때 오른손에 폭발물, 왼손에 단도를 든 김이 조종실 문턱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다. 『당신 뭐요?』기장 이씨가 먼저 말을 걸자 김은 『나는 생명을 각오하고 나온 놈이다. 북으로 기수를 돌려라!』고 소리쳤다. 『사상범이냐 경제사정이냐?』기장이 동기를 묻자 김은 『그따위는 물을 필요 없다.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가자』며 입으로 안전「핀」을 뽑으며 윽박질렀다.
『「오케이」, 북으로 간다』. 이 기장은 선뜻 응낙하는 체하고 김을 속여 불시착키로 결심했다. 이 기장은 수습 전명세씨를 뒷자리에 돌리고 부기장 박완규씨를 옆에 앉힌 다음 기수를 북으로 돌렸다. 이때 이 기장은『납치범이 탔다. 위치는 강릉서쪽30 「노티클마일」지점』이란 사실을 대구중앙항로관제소에 보냈다. 이후 박 부기장이 대구서 서울로 가던 KAL소속 YS11호기와 교신, 유도착륙계획을 알렸다. 이때가 하오1시32분. 『접근하면 죽인다』는 김의 협박에 몇 번이나 접근에 실패한 최 공안원은 「인터폰」을 통해 기장과 『강릉·속초·간성 등에 불시착할 것과 그때 사살할 것』을 비밀리에 합의했다. 이때 박 부기장이 『범인이 강릉을 보면 속이기 어려우니 좀더 북상하라』고 제의, 고도를 6천 피트, 속도는 시속1백20㎞로 줄여 불시착 준비를 하면서 『불시착 즉시 저격할 것』을 합의했다.
바다를 본 승객들이 『납북이다』는 등 숙덕대자 김은 승객들을 향해 『머리를 숙여!』하고 위협 하다가 『까불면 이걸 터뜨린다』고 사제폭발물을 휘두르기도 했다.
이때 김은 『돈주고도 못 볼 평양구경을 시켜 주겠다!』고 떠들기도 했다. 두번이나 연이은 폭발로 기체 안은 연기와 소음으로 가득 찼고 크게 흔들리며 밖의 바람이 밀려 들어와 신문지가 날기도 했다.
이 기장은 극도로 흥분한 김을 속이려고 『우리들은 납북 범에 의해 북으로 가지 않을 수 없읍니다. 신분증 등 증명을 찢어 주시길 바랍니다』고 기내방송을 통해 역선전을 했다. 그리고 이어 간성 상공에까지 북상, 휴전선이 가까워지자 이 기장은 「랜딩기어」를 내려 불시착준비를 시작했다.
이 순간 김은 『이 자식아 화진포인데 왜내려, 그러면 정말 조종실에 이걸 던져!』김이 사제폭발물을 흔들며 고함쳤다. 이 기장은 자기속임수가 들통이 나자 당황, 고도를 다시 높이고 기수를 북으로 돌리자 박 부기장이 『난 이북 못 가요. 죽어도!』절규했다. 이때 고도가 약 3천 피트. 『좋다, 죽어도 같이 죽자』중얼거린 이 기장은 권총을 빼어들고 『공안원 최천일! 네가 범인을 쏘면 내가 너를 쏠 테다. 여기가 이북이다!』고 다시 김을 안심시키기 위한 방송을 시작, 비장한 「쇼」를 연출했다.
이 방송을 듣는 순간 최 공안원은 불시착임을 깨닫고 「스튜어디스」 최양과 같이 거짓으로 엉엉 울며 범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때 승객들은 거짓 방송을 진짜로 듣고 망연자실, 기내는 삽시간에 울음의 바다가 되었다.
김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앞자리의 승객에게 『몇 시냐?』고 묻자 『2시3분이요』라고 대답. 잠시 후 차창밖에 공군비행기가 나타나 총소리가 요란했으나 김은 눈치채지 못했다.
김은 고도가 갑자기 낮추어지자 밖을 내다보며 『여기가 화진포인데 왜 내리려하느냐』고 당황해 소리쳤다.
최 공안원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김의 2m까지 접근, 방아쇠를 당겼다. 필살의 총탄은 먼저 이마에 명중, 김은 픽 쓰러졌다. 순간안전 「핀」이 뽑힌 폭발물이 김의 손에서 떨어져 구르며 폭발한 것과 수습조종사 전씨가 몸을 날린 것이 거의 동시, 김은 즉사했고 전씨는 중상을 입었다.
승객들은 모두 좌석에서 일어나 『살았다 만세』하고 외쳤으며『범인이 죽었으니 안심하고 비행기가 내리니 안전「벨트」를 매시오』라는 「스튜어디스」 최양의 방송이 기내를 가득 채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