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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매체…사건 「브로커」-법조계에 번진 정풍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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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구고법관내에서 일기 시작한 사법부 정풍운동은 검찰과 변협 측의 호응을 받아 보이지 않는 가운데 법조계쇄신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정풍운동이 일게된 원인의 하나인 『사법부가 세속화됐다』는 말이 어제오늘에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거침없이 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이 「청렴과 공정」을 생활신념으로 삼고있는 법관들에게는 못마땅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들은 『그래도 사법부는 덜 썩었다』고 말하면서도, 법관들의 「스캔들」에 신경을 모으고 일벌백계의 효과를 내는 엄단을 바라고있다.

<근본적인 목적은 새 법관상 부식에>
사법부의 「스캔들」은 물론 다른 행정부처의 부정부패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 격으로 아직도 청빈을 생명으로 삼고있는 법관들이 대부분이란 것도 사실이다.
국민들은 아직도 법관상을 성직자처럼 보고 있으며 사법부를 『민주사회의 최후의 보루』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작년 국정감사 때 『사법부가 세속화되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리는데 사실이냐』는 추궁을 받은 민복기 대법원장은 이 같은 현황을 솔직이 시인하고 사법부 직원들의 기강확립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법무장관을 그만둔 후 잠시 변호사 개업을 했던 민 대법원장은 국민의 입장에서 사법부의 현실을 직시했으며 대법원장으로 취임하자 사법부쇄신운동을 강력히 밀어왔다.
극소수의 판사들에게도 부정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정풍운동이 일게 된 근본원인은 사건「브로커」와 일부 악덕변호사들에 의해 쓰게 된 누명을 벗고 본래의 법관상을 재확인하자는 것이다.
국정감사에서 지적될 만큼 일부 법관들의 「스캔들」이 심심치 않게 노출된 것도 사실이지만 악덕변호사·사건「브로커」·일부법원일반직원들에 의한 부정은 공공연한 사실로 인식되어왔다.

<심심찮은 스캔들 표면화되면 사직>
법관들의 「스캔들」은 판결 등 실제재판에서 보다는 적부심·보석·압수물가환부결정·기일연기·증거채택·현장검증 등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 서울형사지법 모 판사는 69년 말 대규모 도박단 사건의 피고인들을 보석해주고 5백여 만원을 받았다는 소문이 나돌아 변호사로 전업했고, 모 판사는 68년 말 지방전출을 하루 앞두고 첫 공판을 열기도전에 2천4백여 만원 어치의 압수된 녹용을 피고인에게 내주어 말썽이 났었다.
검찰이 압수물가환부결정에 대해 항고를 제기, 항소심에서 이 결정이 취소된 후 금품수수여부를 내사하자 그 판사는 사표를 내고 말았다.
66년3월 대전지법 K부장판사와 배석H판사는 민사소송사건의 당사자로부터 외국법률서적과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의 내사를 받게되자 역시 사표를 낸 일이 있었다.

<퇴직할 즈음해서 양심 저버리기도>
특히 법관들은 변호사개업을 하기 위해 퇴직할 즈음해서 고이 지켜왔던 「양심」을 버리기 쉽다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악덕변호사들은 정정당당하게 법 이론으로 맞서 변호하거나 승소할 실력이 없기 때문에 학벌·지연 등을 이용한 정실과 금품공세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판·검사에게 교제비를 써야한다』고 정당한 보수이외의 금품을 요구하는 변호사는 실력 없는 악덕변호사로 보아도 틀림없다.
교제비 조로 받아간 돈마저 대부분은 자신이 중간에서 횡령, 착복하기 때문에 애꿎은 담당 판·검사만이 누명을 뒤집어쓰게 마련이다.

<의뢰인 보는 앞서 봉투 돌린 지능파>
69년3월 M변호사는 담당판사에게 교제비를 써야한다는 구실로 1백80여 만원을 우려냈다가 들통이 나자 사기죄의 쇠고랑을 찬 일이 있다.
X변호사는 같은 방법으로 거액을 받아 사건 의뢰인이 보는 앞에서 담당재판부 3명의 판사에게 봉투를 하나씩 전달, 금품제공의 현장을 확인시켰으나 그 봉투에는 구두 표 한장이 들어있었을 뿐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각급 법원이나 검찰청에서 일부 변호사들이 판·검사 실에 들른 후 「코피」를 사는 것은 이제 불문율처럼 되어있으며 변호사들이 같은 또래의 법관들과 어울려 마작·「포커」등 오락을 내세운 이른바 「도박 증수회」를 자주 한다는 말도 떠돌고 있다. 오락노름판을 버린 후 돈을 나누어주고는 일부러 거액을 잃어 합법적(?)인 증수회를 이룬다는 소문은 이미 널리 나돌아온 것이다.
심지어는 사건「브로커」들에게 변호사 사무원증을 남발, 1건당 5천원∼1만원씩을 주고 광산촌의 낙반사고, 군용차량에 피해를 본 국가상대의 배상사건 등을 청부받는 「앰뷸런스·로이어」에서 의뢰인의 궁박한 상태를 악용, 승소 액의 반 이상을 갈취하거나 송두리째 먹어버리는 비정의 변호사들도 적발되었다.
더구나 사건「브로커」에 이르러서는 비행의 양과 질을 따질 수도 없는 형편이다.
신문보도를 본 후 즉각 피구속자의 가족들을 찾아가 『아무개 판·검사를 잘 아니 교제비만 쓰면 문제없이 석방된다』고 감언이설로 꾀는 것이다.

<"돈 받고 실형이냐" 영문모를 날벼락>
작년 말 대검 수사국에 구속된 「케이스」는 초 지능적이었지만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격이 됐다.
선고를 막 끝내고 판사 실로 들어온 서울형사지법 B부장판사는 날벼락을 받고 할말을 잊었다. 중년부인이 통곡을 하면서 『돈까지 쳐 먹고 실형을 선고하기냐』고 대들면서 욕설을 퍼부은 것이었다.
이 여인의 이야기로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P씨(「브로커」)가 돈든 봉투를 갖고 판사 실에 들어갔다가 나온 후 『돈을 받았으니 틀림없이 집행유예판결로 석방될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전후사정을 알게된 B부장 판사는 즉각 전화를 걸어 대검 수사국에 고발했다.
『○○판사, ××검사와는 친구사이다』라고 큰소리를 치던 「브로커」들이 담당 판·검사의 서기에게 선을 대면 그래도 양심파(?)에 속한다는 말.

<피해자들 함구로 거의 노출 안돼>
전 대법원행정처 Y서기관은 살인죄로 징역15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피고인 가족으로부터 석방시켜준다는 조건으로 1백여 만원을 받았다가 검찰의 수사로 구속직전에 사표를 내어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법원과 검찰의 일부일반직원들은 돈을 받았다가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그대로 반환하기 때문에 부정이 잘 노출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장을 떼는 숙직 판·검사 실이 수위실 옆에 있는 관계인지는 모르나 법원수위들이 법률사무취급단속법위반혐의로 구속되는 것을 이따금 볼 수 있다.
검찰과 경찰이 사건「브로커」에 대한 단속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으나 근절되지 않고 늘고있는 것은 이들의 비행이 잘 노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사건이 해결 안 되고도 돈을 반환 받지 못할 때에만 수사기관에 고소·고발이나 진정을 하게되며 이 같은 경우에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검사들의 「스캔들」은 법관들에 비해 노출되는 것이 별로 없고 아는 사람들 끼리만의 풍문에 그치고 있다. 『검사의 부정은 이를 수사할 상위수사기관이 없고 검찰에서 알더라도 의원면직이나 지방좌천 등의 방법으로 자체해결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 재야법조인은 풀이하고 있다.

<"너무 떠들썩해 방법에 재고여지">
사법부 정풍운동은 본래의 법관상을 재확인한다는 점에서는 조야 법조인들의 호응과 지지를 받고있지만 방법에 있어서는 적지 않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법관은 판결문이외로는 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법언이 있듯이 법관정화도 내부에서 조용히 자신의 자세를 가다듬어 행동으로 표시할 일이지 어떤 뜻에서는 스스로 치부를 드러내는 요란한「운동」으로까지 벌일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서울민사지법 김준수 부장판사는 『사법부정화운동은 사법부가 무엇인가 오염되어 있는 것 같아 듣기 거북하다. 스스로 반성하고 절규한다해서 사법부의 위신이 바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방법론상의 이론을 폈다.
김 부장판사는 『사법부를 필요는 하지만 귀찮은 존재로 알거나 입법·행정 양권의 틈바구니에서 기미나 살피고 비위나 맞추는 한낱 시녀로 전락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는한 사법부의 권위와 여망은 영영 되찾을 길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심준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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