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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권력이동 … 군부 밀리고 당 정치국이 30명 중 25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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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출범 2년차를 맞은 북한 김정은 체제의 권력 중심이 군부(국방위원회)에서 노동당(정치국)으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양 핵심 엘리트 세력 내부의 ‘파워 시프트(power shift·권력 이동)’인 셈이다.

 이는 국회 외교통일위 소속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정부 관련부처가 비공개로 작성한 ‘북한 핵심 30인방’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다. 윤 의원은 1일 “당국이 파악한 김정은 체제에서의 당·정·군 권력구조 개편 동향과 권력 핵심인물들의 현황을 분석한 결과, 북한 정권의 권력 핵심 30명 중 25명이 당 정치국의 고위급 직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자료에 따르면 ‘핵심 30인방’에는 정치국 상무위원(2명), 위원(11명), 후보 위원(12명) 등 당 정치국 고위직이 대거 포함됐다.

선군정치 김정일 땐 없던 당 회의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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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군(先軍)정치’를 강조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인 2010년의 경우, 북한의 핵심 인사 중 정치국의 직위를 가진 경우는 상무위원 1명(김정일 본인), 위원 3명(김영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명예부위원장·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전병호 내각 정치국장), 후보위원 5명(김철만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 정도였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가 열리면서 변화가 생겼다. 공식 서열 2위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정권의 핵심 실세로 꼽히는 최용해 군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과 나란히 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맡았다. 최용해 국장은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 당 비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부부와 함께 후계권력을 떠받치는 핵심 후견세력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주로 당 쪽에 있던 최용해가 군의 총정치국장이 된 것을 보더라도 당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밖에 김경희 비서와 장성택 부위원장, 박봉주 총리, 김기남 비서 등은 정치국 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화학공업 전문가인 박 총리는 장성택의 측근이다. 또 김양건 대남 담당 비서(통일전선부장)와 김영일 국제담당 비서, 곽범기 경제담당 비서, 노두철 내각 부총리 등이 후보위원이다.

 정부는 김정은이 공식 등장한 2010년 9월 이후 북한이 지속적으로 당 정치국원과 후보위원, 당 중앙군사위 구성원 수를 늘려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지난해 4월 노동당 규약과 헌법을 개정하면서 가속화됐다. 특히 김정일 시대엔 거의 열리지 않았던 당 회의들이 늘어났다. 당 대표자회,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정치국 회의, 중앙 군사위원회의 등이 진행되면서 ‘핵 무력과 경제건설 병진 노선’ 등 주요 정책 결정과 현안 처리가 이뤄졌다. 특히 올 들어 ‘당 세포비서대회(1월 28·29일)’, ‘전군 당 강습지도일꾼회의(2월 22일)’, ‘3대 혁명소조원회의(2월 27일)’ 등이 잇따라 개최되는 등 당의 하부 조직을 다지는 모습도 감지됐다.

정통성 인정 받고 당 통해 군부 장악

 올해 6월에는 ‘유일영도 10대 원칙’ 등 통치규범을 개정해 ‘김정은 유일영도체계’ 확립에 나서기도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정은 체제의 세 가지 특징이 당의 주요 요직에 공석이 없다는 점과 회의를 통해 주요 결정을 내린다는 점, 상무위원 등 당 정치국의 주요 인사들이 젊어졌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정성장 수석연구위원도 “정책결정 방식에 다양한 형태의 협의회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이 과거 체제와 다른 특이점”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국방위원회의는 전만 못한 위축세가 뚜렷해졌다. 우선 당 중앙군사위(위원장 김정은)가 국방위를 대체하는 최고군사지도기관으로 부상했다. 2010년 9월 개최한 3차 당대표자 회의에서 ‘조선 노동당 규약’ 27조를 개정해 당 중앙군사위원회를 상설 군사정책결정기구로 명문화했다. 북한은 지난해 9월엔 ‘전시 사업 세칙’을 8년 만에 개정해 전시사업 총괄지도기관을 종전 국방위에서 당 중앙군사위로 변경했다. 사실상 군에 대해서도 ‘당의 영도’를 분명히 해야 함을 천명한 것이다.

 권력운용의 축을 군부에서 노동당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세대교체에 신경 쓴 점도 주목된다. 김정은은 지난해 7월 자신의 군부 과외교사라 할 수 있는 이영호 총참모장을 휴일 회의를 통해 전격 숙청했다. 이후 보직이동이나 계급강등 같은 충격조치를 포함한 롤러코스터식 인사로 군 수뇌부를 긴장시켰다. 아버지 김정일이 군 원로에 대한 우대정책과 선물공세 등으로 환심을 사 권력기반을 다진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김정은은 이런 군부인사 과정에서 자신의 심복인 소장파 군부인사를 요직에 포진시켰다. 소장·중장(별 하나·둘로 우리의 준장·소장에 각각 해당)급 인사를 속속 발탁해 현지지도 등 공식 행사에 수행토록 했고, 강원도 지역 야전지휘관이던 이영길 5군단장을 작전국장을 거쳐 총참모장에 임명했다.

10일 당 창건 68주년 추가 인사 가능성

 노동당에 힘을 실어주면서도 경제문제의 경우 내각의 관여 폭을 넒혀준 건 눈에 띈다. 김정은은 금속공업 전문가인 최영림 총리를 해임하고, 후임에 박봉주를 앉혔다. 노동신문에는 박봉주가 주요 공장·기업소나 대형 건설공사장에 나가 실태를 살피는 이른바 ‘현지요해’ 소식이 실리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일 시대에는 총리의 현장방문 기사가 단독사진과 함께 실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 의원은 “김정은이 세습 2년차에 들어오면서 자신의 취약한 지도력을 보완하고 1인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며 “아버지 김정일이 만들어 놓은 권력구도를 자신의 몸에 맞는 옷으로 바꿔 입으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도 “당을 통해야 지도자의 정통성을 얻을 수 있고, 군과 내각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고 본 것”(양무진 교수)이라거나 “이를 통해 김정은 체제의 안정과 정상화를 도모하려 한 것”(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는 북한이 오는 10일 노동당 창건 68주년을 계기로 권력 정비를 위해 추가적인 인사나 조직개편 등을 단행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와 관련, 윤 의원은 “당의 월권행위와 지나친 간섭으로 인해 정책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구조적 경직성을 심화시키고 김정일의 선군정치하에 비대해진 군부의 불만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진·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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