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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국정원 개혁, 정략적 접근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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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가정보원과 검찰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 후 또다시 정치권이 진흙탕에 빠진 듯한 모습이다. 이런 와중에 최근 민주당은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로 인해 조성된 정국을 ‘종북몰이’로 규정하는 한편, 김한길 대표는 “국정원의 죄가 이석기의 죄보다 크다”고 언급했다. 더불어 민주당 의원들은 국정원 개혁방안으로 대공 수사권의 폐지와 국내정보 파트의 분리를 제시하며 관련 입법 추진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정국 반전을 꾀하기 위한 일련의 정치적 표현 및 행동으로 보이지만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우선 국가전복을 모의한 이적성 정치세력에 대한 국정원의 수사와 이들을 사회에서 격리하려는 노력은 대한민국의 국가 안위 및 국민의 생존을 위해 당연히 요구되는 것이다. 곧 중대한 안보범죄의 사법처리 추진은 ‘종북몰이’가 아니라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에 따른 정당한 안보수사 및 검찰권의 행사라고 봐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엄연히 ‘자유의 적’을 용납하지 않는 ‘방어적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국정원 직원이 온라인상에 게재한 댓글 중 부적절한 대목이 있었다면 국정원 개혁 차원에서 바로잡고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면 된다. 그럼에도 ‘이석기의 죄’ 즉, 내란음모·선동의 죄보다 더 크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국정원의 안보수사권 폐지 추진은 작금의 엄중한 한반도 안보 상황에 비춰 부적절하다. 철저한 훈련과 신분 세탁을 거쳐 잠입하는 간첩의 체포를 위해서는 장기간의 첩보 수집 및 내사, 대북 정보망, 외국 정보기관과의 협력 등 일반 범죄의 수사와는 차원이 다른 전문 역량과 수사 인프라가 요구된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2000년대 이후 직접 침투보다는 중국·동남아 등을 통한 우회 침투와 탈북자 위장투입을 강화하는 한편 해외에서 내국인 포섭 공작을 벌이는 등 고도로 지능화된 수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또 간첩사건은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함에도 범행이 드러난 뒤에야 비로소 수사·처벌하는 제약요소를 안고 있다. 그런 만큼 암약단계에서 색출해 조기 적발하는 예방 활동이 긴요하다. 하지만 경찰이나 검찰 등 일반 수사기관에 이러한 역량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난 50년간 북한과 연계된 간첩은 600여 명에 이르는데 90%가 국정원에 의해 적발·체포됐다는 사실은 그러한 점을 잘 말해준다.

 남북한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정전상태에 있다. 북한은 대남혁명전략을 포기하지 않은 채 대한민국에 대해 반국가단체 또는 체제전복세력으로 엄존하고 있다. 이 같은 북한의 위협과 안보수사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대공수사는 정보수사기관인 국정원이 계속 담당하는 게 타당하다.

 국가정보기관을 국내 및 해외 파트로 분리할 경우 안보·군사 등 전통적 안보 범주와 경제·통상·환경·테러·산업보안 등 포괄적 안보 개념에 입각한 전방위 정보활동 수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또 정보 사각지대의 발생 등 부작용을 피하기 어렵다. 그것은 9·11테러 이후 선진국 정보기관의 정보역량 통합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

 국정원 개혁은 국내외 정보환경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졸속 개편을 밀어붙일 경우 국내외 정보망 상실 등 심각한 국가 정보 역량 약화를 초래할 수 있는 까닭이다. 과거 미국에선 지미 카터 대통령 정부가 중앙정보국(CIA)의 기구와 기능을 축소했다가 정보 역량 약화를 초래했고 로널드 레이건 정부가 재건하는 데 엄청난 대가를 치른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대공·안보 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하는 자세는 지양해야 한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