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 쓴다고 욕하고 놀리고 … 언어폭력 중학생 1700만원 물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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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로 조롱을 당한 한 중학생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갖게 되자 법원이 가해 학생의 부모에게 배상을 명령했다.

 울산지법 민사3단독 김성식 판사는 30일 정모(16)군과 정군의 부모가 중학교 동급생 이모군의 부모 등에게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정군과 부모에게 위자료와 치료비 등으로 17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인천의 모 중학교에 다니던 이군은 2010년 3월부터 지난해까지 2년6개월 동안 동급생인 정군에게 “장애인, 병신, 나가 죽어라”라고 하는 등 모두 18차례 심한 욕설을 했다.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면서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주로 같은 반 학생 20여 명이 있는 교실에서 정군에게 언어폭력이 가해졌다.

담임교사를 비롯한 학교는 정군이 수년간 조롱을 당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교사가 없을 때 언어폭력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보복을 우려한 정군도 괴롭힘을 당한 사실을 학교에 알리지 않았다. 정군의 학급친구들 역시 정군을 모른 체했다.

 정군은 언어폭력을 당한 이후부터 가슴통증과 호흡곤란, 우울증 등을 호소했다. 병원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진단이 내려짐에 따라 지금도 심리·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더 이상 이 학교를 다니기 힘들다고 판단한 정군은 3학년 때 울산의 한 중학교로 전학 갔다.

 정군의 부모는 이군의 부모와 담임교사, 인천시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군의 부모는 평소 자녀가 학교 친구 등을 괴롭히거나 타인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지도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게을리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위자료는 정군에게 500만원, 정군의 부모에게 400만원을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800만원은 병원 치료비 등 재산상 손해액이다.

 반면에 담임교사와 학교에는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담임교사가 교실에 없는 상황에서 욕설이 이뤄진 점, 학생들을 상담하는 과정에서도 신고나 상담 요청이 없는 점으로 볼 때 교사가 가해행위를 파악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군은 보호관찰소 프로그램 이수 처분을 받았다.

울산=차상은 기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교통사고·재난, 폭력 등 충격적인 사고를 겪은 뒤 앓게 되는 정신 질환으로 사고 기억의 재생, 불안장애, 공황 발작, 분노 등의 증세를 보인다. 심한 경우 사회 생활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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