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정부 2주 셧다운 땐 성장률 0.3%P 다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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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개혁에 대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오기와 공화당의 ‘반(反)오바마’ 정서가 미국을 17년 만의 연방정부 ‘셧다운(shut down·폐쇄)’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른바 오바마케어를 둘러싸고 벌이는 미국판 정쟁이 초래한 비극이다.

 연방정부 폐쇄로 가는 초침은 이미 작동하기 시작했다. 2014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9월 30일 자정(한국시간 10월 1일 오후 1시)까지 새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연방정부가 사실상 문을 닫는다. 공화당이 다수인 미 하원은 지난달 28일 오바마케어의 시행 시기를 1년 늦춘 예산안을 처리해 상원으로 넘겼으나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했다. 급기야 연방정부 폐쇄를 하루 앞둔 지난달 29일 미 의회는 협상을 중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정부가 셧다운으로 치닫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연방정부가 18번째 셧다운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30일 오후 4시45분 각료회의까지 소집해둔 상태다.

 막판 극적인 타협 가능성은 실낱처럼 남아 있지만 의원들조차 비관론이 팽배하다. 2010년 탄생한 오바마케어가 민주당과 공화당 간 이념 논쟁으로 번질 만큼 뿌리 깊은 반목의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오바마케어가 시행될 경우 기업들이 정규직 직원들을 줄여 고용시장에 혼란이 올 수 있다고 비판한다. 한 예로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주 30시간 이상 근무하는 직원들의 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 기업주들이 보험료 부담을 줄이려고 직원 수나 고용시간을 억지로 줄이는 사태가 속출한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3년 동안의 논쟁을 거치고 대법원의 합헌 판결, 그리고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은 오바마케어를 더 이상 미룰 순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무엇보다 오바마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다.

 문제는 10월 1일부터 연방정부 폐쇄가 현실화될 경우 초래될 혼란이다. 정부 살림살이를 담은 예산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만큼 재정지출이 중단돼 공무원들의 일시 해고(무급휴가)가 불가피하다. 당장 공원·도서관·면허시험장 등 공공기관이 문을 닫게 돼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국무부 등의 여권·비자 발급 업무도 중단된다. 한국의 경우 비자면제 대상 국가라 당장은 큰 피해가 없지만 유학생의 비자 갱신 등은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미 연방정부 폐쇄는 1976년 이래 17차례 발생했다. 그중 최장기간은 빌 클린턴 대통령 때인 95년 12월 16일부터 96년 1월 6일까지의 22일이다.

 연방정부가 끝내 폐쇄되면 미 경제가 받을 충격은 얼마나 될까.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매크로이코노믹어드바이저(MA)는 “연방정부가 2주 정도 폐쇄되면 올 4분기 성장률(연율)은 기존 예상치보다 0.3%포인트 낮은 2.2%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정부 폐쇄로 무급휴가를 떠나야 하는 공무원 수는 총 210만 명 가운데 36%인 75만 명 정도다. 가장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연방 공무원들이 무급 휴가를 떠나야 하는 것 자체가 내수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실제 클린턴 행정부 시절 호황기였음에도 불구, 연방정부 폐쇄로 분기 성장률이 0.25%포인트 떨어졌다. 요즘처럼 미 경제가 아직 잠재성장률(2.7~3.2%)만큼도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때는 소비심리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

 폐쇄 기간이 길어질수록 파장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마크 잔디는 “폐쇄가 3~4주 정도 이어진다면 올 4분기 경제성장률이 1.4%포인트 정도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예상치를 기준으로 보면 성장률이 2.5%가 아닌 1.1% 수준으로 내려앉는다는 얘기다.

 연방정부 폐쇄뿐 아니라 미국은 또 하나의 시한폭탄도 안고 있다. 10월 17일까지 연방정부 채무한도를 의회가 올려주지 않을 경우 사상 초유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도 맞는다. 제이컵 루 재무장관은 “10월 17일까지 부채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미국이 채무를 이행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무디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정부 폐쇄는 일시적인 불편함에 그칠 수 있지만 부채한도 협상 결렬은 미국과 글로벌 시장이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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