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결실>
한평생을 기생으로 마친다는 것은 을씨년스러운 일이다.
대부분의 기생들이 모여서 기다리는 것은 좋은 상대를 만나 행복하고 유복한 가운데 인생의 나래를 접는데 있었다.
여자로 태어나서 어느 누군들 이와같은 소망을 갖고있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살얼음을 딛는 듯한 나날을 보내는 기생들이고보면 한층 더 간절했고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당대의 명사들이었기 때문에 잡힐 듯 말 듯 안타깝기도 했다.
오늘은 비록 기적에 몸을 담고있지만 일단 대감님이 잘만 보아주시면 내일은 당장 호칭이 달라지고 신세가 활짝 펴게 되는 것이었으니 평소에 행실을 조심하고 지혜와 덕을 쌓기를 게을리해서는 안되었다.
남녀간의 사랑은 은근한 것이지만 그럴수록 남의 눈에 빨리 띄게 마련이다.
요릿집이나 사랑놀음에서 불러도 임자있는 기생은 『귀먹었다』고 한마디만하면 다들 알아들었다.
귀먹은 기생이라면 손님들이 별로 찾지 않았고, 동료 기생들은 자기들일처럼 숨을 죽이고 사태의 발전을 눈여겨봤다.
귀먹은 상대가 잘 풀리고 제대로 발전돼가면 드디어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는 것이었다.
또한 기생과 손님이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대령기생이라는 것도 있었다. 어느 대감이 어느 한 기생만을 계속해서 부른다면 그 기생은 그 대감의 대령기생이었다.
어쨌든 사랑의 열매가 결실되어 양반이 기생을 맞아들이는 것을 그때말로 『떼들인다』고 했다.
정동에 사는 대감이 떼들이면 그 기생은 그날부터 정동마마님으로 불렸다.
어제까지 불러 함께 놀았던 손님도 이날부터는 아무개마마님이라고 깎듯이 대접해야 했고 길에서 만나더라도 어제까지 놀던 허튼 수작은 씻은 듯 없어지고 아예 모르는체 의젓하게 지나쳐야 했다.
이때 떼들여가는 사람의 지위에따라 기생의 호칭이 달랐다. 현직이나 전직 대감이라든가 직위가 있는 영감에게 가는 기생은 마마님이라고 불렀고 벼슬없는 양반에게 떼들여가는 기생은 아나사님이라고 불렀다.
기생을 떼들어가는데는 복잡한 절차와 많은 돈이 들었다. 마음맞는 기생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이 그때나 이때나 제일 첫째 치러야 하는 관문이다. 일단 동의을 얻은 사람은 기생집에 들어가 며칠간 같이 생활해야 한다. 이때 기생어머니는 딸의 신랑이 될 사람의 사람됨됨이와 재력등을 요모조모 저울질하게 되고 남자는 여기서 잘보여야 한다. 이무렵 기생어머니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만일 여기서 기생어머니의 미움을 산다든가 마음에 들지않게되면 성사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와같은 고비를 무사히 넘긴 양반은 곧 신방에 쓸 갖가지 가구를 장만하여 신방을 꾸미고 대성사등 대금업회사에 빚진 것이 있으면 모두 갚은 다음 버젓하게 떼들이는 것이다.
한편 기생은 권번에 영업장을 되돌려주고 영감을 따라나설때 하인들에게 그동안 보살펴준 노고에 대한 보답으로 일일이 돈을 주며 석별의 정을 나눈다. 이것을 행하라고 불렀다.
만약 떠나는 기생이 이같은 행하를 두둑히 내놓지 못하게 된다면 기생뿐만 아니라 떼들여가는 양반의 체면이 크게 깎이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생이 떼들여 가는 날 양반은 꽃다운 기생을 맞는 기쁨에, 기생은 대망의 남편을 만난 기쁨에, 그리고 하인배들은 두둑히 내리는 행하가 있기때문에 기생집 분위기는 화사하기만 했다.
이무렵 기생을 떼들이기 위해서는 평균 2천원정도가 필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순사들의 한달 봉급이 15원, 국민학교 교사 봉급이 40여원이었으니 순경의 10여년, 교사의 4년치 봉급에 해당하는 큰 돈이었다.
이 무렵 기생들의 옷차림새는 매우 호화스러웠다.
백설이 누리를 하얗게 덮은 음력 정초가 되면 보들보들한 토끼털로 된 두루마기를 입었고, 머리에는 은비녀를 꽂았고 손에는 은가락지를 끼었다.
같은 1월이지만 보름쯤되면 옷과 장식이 바뀌어 은비녀대신 진주비녀를, 은가락지 대신 다른 패물반지로 갈아끼웠다.
춘삼월 1일이 되면 기생들의 패물은 비취로 모습을 바꾼다. 계절이 바뀌는 가을 10월, 초하룻날이 되면 이번에는 금비녀 금가락지 금귀개등 금패물로 장식하고, 그위에 털로된 모물을 입었다.
철따라 호화찬란한 패물로 치장했지만 지체있는 명기들의 가슴속엔 이대로 가는 청춘이 아깝기만 했다. <계속>계속>사랑의>
(51)제4화 명월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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