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무책임 장관, 무기력 정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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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 파동으로 현 정권의 인사 난맥상이 다시 드러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장관의 무책임한 처신이지만 이를 단호하고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는 정권의 무기력도 심각한 상황이다. 6개월 사이에 정권과 갈등을 빚고 물러난 인사만 벌써 양건·채동욱·진영 3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진 장관을 조속히 해임하고 공석에 대한 후속인사를 단행해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장관은 부처 책임자인 동시에 국무회의를 구성하는 국무위원이다. 복지 정책의 중요성으로 복지부는 핵심 부처다. 진 장관이 그런 부처를 맡은 건 정권 내 그의 위상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 박근혜 후보 선대위의 국민행복추진위 부위원장, 대통령직인수위의 부위원장을 지냈다. 대통령의 철학과 국정운영 방식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고, 또 이해해야 하는 측근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장관·국무위원으로서 더욱 무거운 책임감으로 행동해야 할 것이다.

 진 장관은 사퇴이유에서 오락가락했다. 처음엔 그가 기초연금 후퇴에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이라고 측근이 언론에 말했다. 파문이 일자 진 장관은 기초연금과는 상관이 없고 예산·인원에서 느끼는 복지부의 무력감과 한계 때문이라고 했다. 그랬다가 어제는 기초연금을 국민연금에 연계하는 정부 방안에 반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이 사실이건 어떤 것도 사퇴 이유가 될 수 없다. 기초연금 축소는 재정적인 이유로 인한 정권의 책임이지 복지부 장관의 잘못이 아니다. 그가 ‘국민연금 연계’에 반대했든 안 했든 일단 정부가 내부협의를 거쳐 정책을 정했으면 주무 장관은 이를 받아들이고 국민과 야당을 설득하는 일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더군다나 ‘국민연금 연계’는 그가 깊숙이 관여했던 대선공약 아니었나.

 설사 기초연금 갈등이 컸다 해도 복지부에는 다른 중요한 업무가 많다. 그리고 예산·인원의 제약은 모든 부처의 애로여서 핑계거리도 되지 않는다. 진 장관은 사의를 둘러싼 소통부재도 얘기하지만 대통령을 대신해 총리가 그를 불러 설득한 것을 보면 필요한 소통은 있었다.

 박근혜 정권은 진영 파동으로 위신과 기강에서 또 상처를 입게 됐다. 애초 국무위원처럼 중요한 공직에 투철한 사명감을 갖지 못한 사람을 임명한 것은 박 대통령의 인물 판단력에 문제가 있음을 다시 드러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장관 관리에도 미흡함을 보였다. 그가 핵심측근이며 주요 장관임을 고려해 사퇴설이 언론에 흘러나왔을 때 그에게 직접 진위와 사정을 확인하고 분명한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

 양건 감사원장, 채동욱 검찰총장, 진영 복지부 장관은 모두 공직에 대한 사명감에서 적잖은 하자를 보였다. 박 대통령은 개인의 인기나 이익보다는 공직의 완수와 정권의 성공에 헌신할 수 있는 인물로 정권의 허점을 보강해야 한다. 핵심부에서부터 구멍이 뚫리면 변방은 어떨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