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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블 유발자 베를루스코니 … 이탈리아 국채위기 뇌관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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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가 다시 벼랑 끝으로 몰렸다. 세 차례에 걸쳐 총 9년을 집권했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7) 전 총리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 반복돼온 이 나라 정정 불안의 핵심에는 늘 그가 있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자유국민당(PdL)은 28일(현지시간) 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당 소속 장관 5명 모두가 곧 사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립정부에서 발을 빼겠다는 의미다.

 ANSA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PdL은 정부의 부가가치세 인상 방침(21%에서 22%로)에 대한 반대를 연정 탈퇴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상원에서의 베를루스코니 의원직 박탈 움직임에 대한 반발로 해석하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이탈리아 상원의 면책위원회는 다음 달 4일 베를루스코니의 의원직 유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베를루스코니는 지난달 대법원에서 탈세·횡령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006년에 만들어진 교도소 과밀 해소 제도에 따라 형기가 1년으로 줄었다. 또 70세 이상의 노인은 중죄가 아닌 경우 가택연금이나 사회봉사로 형을 대신할 수 있어 교도소 수감은 면했다. 그는 다음 달 중순까지 연금과 봉사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PdL이 연정에서 빠지면 엔리코 레타 총리의 집권 세력은 연정 파트너들을 더 규합해야 한다. 이에 실패하면 곧 다시 총선을 치를 수밖에 없다. 상원에서 17%의 의석을 갖고 있는 제3의 정치조직 ‘오성운동’은 조기 총선을 요구하며 새 연정에 참여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경제 개혁 조치에 대한 의회의 동의가 절실한 레타 총리는 베를루스코니를 향해 “미친 짓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곧 조르조 나폴리타노 대통령을 만나 정국 수습책을 상의할 계획이다.

 이 같은 정치불안은 이탈리아 신용등급엔 치명적이다. 미국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 등은 올 7월 이탈리아 등급을 강등하면서 “정치상황에 따라” 1~2등급 더 강등할 수 있음을 밝혔다. 그 상황은 바로 연정붕괴다.

 이탈리아의 현재 등급은 BBB (Baa2)다. 두 단계만 내려서면 투기등급이다. 그러면 이탈리아 국채는 은행과 뮤추얼펀드가 살 수 없게 된다. 로이터와 블룸버그통신은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등급 강등은 세계 3대 채권시장인 이탈리아 국채시장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이탈리아 국가부채는 7월 말 현재 2조3300억 달러(약 2560조원) 정도다.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3위 국채발행 국가다. 이런 국채가 투기등급이 되면 글로벌 자금시장이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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