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8세기 고성에서 정갈하게 가을을 열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42호 14면

1 천장화가 아름다운 에스터하지 성 하이든 홀에서 아담 피셔가 지휘하는 하이든 필이 총 리허설을 하고 있다.

탄생 200주년을 맞은 베르디와 바그너로 가득했던 올여름 유럽 페스티벌들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오자마자 찾아간 곳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도시 아이젠슈타트(Eisenstadt)였다. 철의 도시(Iron city)라는 의미 덕분에 철강공업 도시인 줄 알지만 이 도시에는 공장이 없다. 역사적으로 터키 군의 공격을 철옹성처럼 지켜내 붙여진 이름이다.

25주년 맞은 오스트리아 ‘하이든 페스티벌’

이 도시 중심에는 음악가 하이든(Franz Joseph Haydn·1732~1809)이 무려 40년간 봉직했던 에스터하지 가문의 아름다운 성(Schloss Esterhazy)이 우뚝 서 있고, 바로 이곳에서 열리는 ‘하이든 페스티벌(Haydntage)’이 오스트리아의 가을을 연다. 매년 열흘간 열리던 것과 달리 25주년을 맞는 올해는 9월 5일부터 22일까지 더욱 성대하게 펼쳐졌다. 매년 주제가 바뀌는데 올해는 ‘하이든과 베토벤’이었다. 베토벤의 음악에 영향을 미친 하이든의 영향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음악회들이 이어졌는데, 물론 공연마다 하이든의 곡들이 중심적으로 연주됐다.

트레버 피녹이 지휘한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의 하이든 오라토리오 ‘사계’,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와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와의 하이든 바이올린 협주곡 협연, 조스 반 임머질의 포르테 피아노 연주,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메조 소프라노 안겔리카 키어슐라거의 하이든을 포함한 독일 가곡 공연 등이 천장화와 벽화로 장식된 640석 하이든 홀과 100석 규모의 엠파이어 홀 두 곳에서 이어졌다.

2 오케스트라 주자의 모차르트 ‘마술피리’ 서곡 악보. 3 하이든 페스티벌을 이끌고 있는 예술감독 발터 라이혀 박사(왼쪽)와 상임지휘자 아담 피셔. 4 첼리스트 솔 가베타가 피아니스트 세르지오 치오메이와 리사이틀을 연주하고 청중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5 스크린을 내려놓고 총 리허설을 하고 있는 아담 피셔와 하이든 필.

제 1회 하이든 페스티벌을 3개월 앞두고 29세로 부임, 런던심포니를 초청한 능력을 발휘했으며 54세가 된 지금까지 25년 동안 하이든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인텐단트)을 맡아온 발터 라이혀 박사는 “하이든 홀이 오스트리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18세기에 지어진 홀”이라고 말한다. 빈필하모닉이 연주하는 무지크페어라인 홀은 19세기에 지어졌고, 빈국립오페라도 20세기에 다시 지어진 공연장이다. “거대한 홀에서 하이든의 곡을 연주하는 것과 하이든이 원했던 보다 작은 규모로 이곳에서 하이든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과는 음악적 차이가 많이 납니다.”

18일 본 공연에서는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화성의 정원)를 이끌고 있는 조반니 안토니니가 지휘하는 캄머오케스트라 바젤과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연주했다. LG아트센터 공연에서 바흐 무반주 모음곡으로 철학적 사유를 들려준 테츨라프는 이날 극강의 테크닉과 넘치는 음악성으로 아름다운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연주 도중 사고가 두 차례 발생했다. 1악장에서 호른 주자가 갑자기 기침이 심하게 나서 밖으로 나갔다가 2악장에 다시 들어왔고, 2악장에서는 갑자기 제 1바이올린의 현이 끊어져 버린 것. 하지만 지휘자 안토니니와 테츨라프는 농담도 곁들이면서 지혜롭게 위기의 순간들을 넘겨 오히려 잊지 못할 공연으로 만들었다. 보통 페스티벌 주최측이 출연자들에게 주는 선물은 대부분 꽃다발인데, 하이든 페스티벌에서는 에스터하지산 와인을 선물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조반니 안토니니는 이탈리아 지휘자다운 열정적이고 풍부한 표정의 지휘로 캄머오케스트라 바젤의 사운드를 이끌었다.

2부에서는 하이든이 런던에서 공연한 잘로몬 교향곡 시리즈 중 하나인 교향곡 102번 ‘나의 가장 사랑하는 애인에게’를 연주했다. 하이든 음악이 갖고 있는 풍부한 유머와 쾌활함이 살아 있는 연주였다. 안토니니는 앙코르로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을 신바람 나게 지휘하며 공연을 마쳤다.

19일에는 하이든의 유명한 오라토리오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이 빈의 오르페오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빈 실내합창단에 의해 연주됐다. 어린 시절부터 빈소년합창단의 전신인 궁정교회 합창단에서 보이 소프라노로 노래했으며 평생 교회음악과는 특별한 인연을 맺어 왔고 지금도 아이젠슈타트의 하이든 교회 속 아름다운 관 속에 묻혀 있는 하이든의 그리스도 수난 장면에 대한 종교적 고백을 담아낸 작품을 4명의 독창자와 합창단은 매우 정갈한 화음으로 불러 깊은 감동을 줬다.

20일 하이든홀에서 연주한 세계적 명성의 첼리스트 솔 가베타는 공연 전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이 세 번째 하이든 페스티벌 연주다. 이 홀에서 하이든 곡을 연주하면 정말 그의 음악과 혼연일체가 된다는 특별한 느낌을 받는다. 맞춤복같이 잘 들어맞는 홀이다.” 가베타는 이날 세르지오 치오메이의 천재성 번뜩이는 열정적인 피아노 반주로 하이든-베토벤-브람스로 이어지는 독일 고전 음악의 전통과 형식미를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이 두 사람의 주고받는 음악적 대화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흥미로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