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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사과의 원칙과 기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42호 18면

명절 끝에는 알게 모르게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르는 사람과의 다툼은 특별한 외상이 없는 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하지만 가까운 지인과의 갈등은 그 후유증이 오래 간다. 어쩔 수 없이 봐야 되니까. 싫다 해도 관계를 끊을 수 없는 직장 동료나 가족의 경우 얼굴 붉힐 일이 생기고 나면 서먹해져서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적지 않다.

 애초에 거북한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얘기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어울리다 보면 불협화음은 당연하다. 생각이 다르니까. 어느 한쪽이 무조건 참는 관계는 건강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오래가지도 않는다. 누구든 사과를 먼저 받고 싶을 수 있겠지만 때론 내 잘못 때문에 사과를 해야 할 상황도 있다. 한데 사과와 용서가 담긴 말은 쉽지 않다. 먼저 사과를 하면 왠지 지는 것 같고 굴욕감이 든다고도 한다. 어쩔 수 없이 사과하고 용서하는 척하면 마음이 찝찝하고 더 괴로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과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우선은 진정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 싫은데도 억지로 하는 빈말은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일단 격한 상태라면 호흡을 들이마시고 흥분을 가라앉힌 다음에 화해해야 할 것이다. 상한 내 감정을 상대방이 해결해 주리라는 기대는 하지 말자. 대개 사람들은 자기가 더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설령 확실하게 피해를 보았고, 상대방이 백번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아픈 마음은 내 문제다. 내 상처까지 어루만져 귀신같이 치유해 줄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상한 감정의 세계에선 ‘결자해지’란 말은 없다.

일러스트 강일구

 사과나 용서의 말은 가능한 한 간결하고 짧게, 그러나 핵심은 확실하고 명료하게 해야 한다. 말과 글은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들어갈수록 추하고 영양가 없이 지저분해진다. 특히나 부정적인 이야기가 오고 갈 때는 서로 말꼬리를 잡지도 잡히지도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강하고 여유 있는 사람만이 진짜 사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느 모로 보나 자신보다 약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시시비비를 지나치게 따지고 있다면 스스로의 소인배 기질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사과를 남에게 미루거나, 잘못된 상황의 책임을 모면하려고 잔꾀를 쓰는 것은 효과도 없고 신뢰만 잃을 뿐이다. 오물을 뒤집어쓰더라도 소매를 걷어붙이고 언어의 쓰레기를 먼저 치우는 능동적인 사람이 결국 최후의 승자다. 너무 질질 끌다 적절한 시간을 놓쳐버리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나마 함께 사니까 이런저런 일로 싸울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가족 중 누구 하나가 죽게 되거나 아예 사라져 버린다면 어쩌겠는가. 미안하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그 짧은 사과의 말에 왜 그리 인색했는지 후회하게 될 것이다.

 아웅다웅 싸우는 것도 같이 사는 재미 중 하나다. 아등바등 잘잘못을 따져 봐야 길게 보면 큰 이익을 볼 것도 손해 볼 것도 없다. 이런 관용의 원칙은 꼭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든, 단체든, 국가든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인간이니까. 기왕에 벌어진 잘못, 과연 누가 나부터 먼저 잘못되었다고 사과하고 고백하는지가 관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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