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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상금 껑충 … LPGA 투어 경기 줄어든 탓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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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호 19면

최나연·박인비·유소연·장하나·김자영·박세리(왼쪽부터)가 KDB 대우증권클래식 개막 하루 전인 26일 우승컵 앞에서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사진 KLPGA]

27일 강원도 평창 휘닉스파크 골프장에서 막을 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KDB 대우증권 클래식. 지난해 초청 선수로 출전해 우승한 박세리(36·KDB산은금융)는 타이틀 방어를 위해 2년 연속 이 대회에 출전했다. 이 대회에는 박세리를 비롯해 세계랭킹 1위 박인비(25·KB금융그룹), 최나연(26·SK텔레콤), 유소연(23·하나금융그룹), 최운정(23·볼빅)이 가세하면서 판이 더 커졌다. 주최 측은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했던 박세리·최나연·박인비·유소연의 출전으로 톡톡한 홍보 효과를 봤다. 서울에서 먼 강원도 평창에서 대회가 개최됐지만 수많은 취재진과 갤러리가 몰렸다.

해외파 골퍼 잇단 내한 러시, 왜?

 해외파 선수들의 내한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지난 8월 열린 KLPGA 투어 하반기 첫 대회인 넵스 마스터피스 때는 박희영(26·하나금융그룹)과 서희경(27·하이트진로)이 출전했다. 9월 초 열린 한화금융 클래식에는 12명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선수들이 출전하는 등 하반기에 유난히 많은 해외파가 국내 그린을 밟았다.

올 시즌 대회마다 총상금 5억 넘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파 선수들을 국내 대회에 출전시키려면 적지 않은 초청료를 지불하고 모셔 와야 했다. LPGA 투어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의 경우 상금이 큰 대회를 포기하고 국내 대회에 출전하는 데 대한 보상으로 초청료를 보장받았다. 전성기 시절의 박세리는 2억원 정도의 초청료를 받고 국내 대회에 출전했다. 최나연도 1억원 안팎의 몸값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추세가 바뀌고 있다. 박세리와 최나연은 대우증권 클래식에 초청료 없이 출전했다. 가장 몸값이 높은 그들이지만 스폰서 업체인 대우증권이 개최하는 대회이기 때문에 초청료 없이 국내 대회에 참가했다. 박인비와 유소연·최운정도 초청료를 받지 않고 선뜻 국내 대회에 출전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두 명의 스타 플레이어가 대회 흥행을 책임졌던 과거에는 톱스타급 선수들의 경우 억대 몸값을 주고 모셔 와야 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스타 플레이어들이 많아졌고 초청료는 그만큼 저렴해졌다. 항공료와 숙박비 등의 경비만 지불하고도 초청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큰 규모의 대회에는 초청을 받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6명의 LPGA 투어 선수를 초청했던 한화금융 클래식은 올해 초청을 희망하는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초청 선수 규모를 12명으로 늘렸다. 박희영은 대우증권 클래식 출전을 희망했지만 초청 선수 정원이 일찌감치 채워져 대회에 나서지 못했다. KLPGA가 몇 해 전 초청 선수의 기준을 전년도 LPGA 투어 상금랭킹 20위,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와 유러피언여자프로골프투어 30위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면서 랭킹 밖 선수들은 스폰서 추천을 받기 위한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KLPGA 김남진 국장은 “초청 선수 제한 규정은 국내 선수들의 시드를 보호해 주기 위한 제도”라며 “해외에서 활동 중인 선수들로부터 국내 대회에 초청해 달라는 요청이 꾸준히 들어오지만 모두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해외파 선수들의 국내 대회 출전이 늘어난 이유는 KLPGA 투어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KLPGA 투어는 3년 전만 해도 총상금 4억원 이하 대회가 절반이나 됐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5억원 미만 대회가 없을 만큼 규모가 커졌다. 대우증권 클래식은 총상금 6억원, 우승상금 1억2000만원을 내걸었다. 국내 최대 규모인 한화금융 클래식은 총상금 12억원, 우승상금 3억원으로 일반적인 LPGA 대회와 맞먹는 규모로 치러졌다. 상금 규모가 커지면서 초청 선수로 출전해 우승과 투어 카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노리는 선수들도 생겼다.

 해외파 선수들의 국내 대회 출전은 LPGA 투어의 환경 변화와도 관련 있다. 2008년을 정점으로 LPGA 투어의 대회 수가 줄면서 군데군데 빈 스케줄을 이용한 해외파들의 국내 대회 출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대우증권 클래식에는 LPGA 투어가 두 주 쉬면서 5명의 선수가 몰렸다. 국내 대회에 처음 출전한 최운정은 “한국 투어에 꼭 한 번 나오고 싶어 5개월 전부터 초청을 받기 위해 움직였다. LPGA 투어의 스케줄이 없으면 미리 한국 대회 출전을 물색하는 선수들도 많아졌다”고 했다.

 선수들의 인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대회 출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팬과 스폰서와의 소통에 관심을 돌리면서 팬 사인회와 골프 클리닉 등 다양한 이벤트를 겸하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미국 투어 유소연은 “국내 대회에 한 번 출전하려면 연습과 휴식시간을 재조정하는 등 감수해야 할 것이 많다. 그래도 1년에 1~2번씩 대회에 나오는 이유는 나를 키워 준 한국 투어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한국 팬들에게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파 실력 늘어 해외파가 우승 장담 못 해
해외파 선수들은 그동안 객관적인 전력에서 국내 투어 선수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1년 최나연, 지난해에는 유소연(이상 한화금융클래식)과 박세리(KDB 대우증권 클래식)가 우승하는 등 국내 대회에서 몸 풀듯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다르다. 국내 투어 선수들의 기량이 급성장하면서 우승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고 ‘잘해야 본전’이라는 부담감은 더 커졌다. 대우증권 클래식 1라운드에서 4오버파를 친 최나연은 “한국 투어 출전은 미국 대회보다 몇 배 더 부담이 된다. 꼭 잘 쳐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한두 샷을 실수하면 실망감도 몇 배 커진다. 한국 선수들의 기량이 너무 좋아져 좋은 성적을 내기가 점점 더 힘든 것 같다”고 했다.

 국내파와 해외파의 치열한 우승 경쟁은 KLPGA 투어의 흥행에 불을 지피고 있다. 대우증권 클래식 1라운드에는 박세리-박인비-김세영, 최나연-김효주-장하나가 한 조에서 맞붙으면서 평일인데도 수많은 갤러리가 대회장을 찾았다. 휴가를 내 대회장을 찾은 갤러리 백종철(35)씨는 “LPGA 투어의 우승 경쟁보다 더 치열하고 박진감 넘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파 선수들과의 경쟁으로 국내파 선수들의 기량도 좋아지는 선순환도 엿보인다. 한화금융 클래식에서 세계랭킹 5위 유소연을 물리친 김세영(21·미래에셋)은 “세계적인 선수와의 경쟁은 처음이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김세영은 한 주 뒤 메트라이프 KLPGA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해 상금랭킹 1위로 올라섰다. 박세리는 “대회에 나올 때마다 국내 선수들의 기량에 깜짝 놀란다. 아직까지 한국 대회에 나오면 코스 세팅이나 경기 운영적인 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러나 선수들의 기량 발전에서 밝은 미래를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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