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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논란 … 주목받는 유전자 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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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① 친자 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는 범죄수사 드라마 ‘CSI’에 나오는 유전자 감식과 원리·방법이 같다.
② 유전자 검사에 사용되는 모근 샘플
③시약을 사용해 모근에서 유전자 검사에 사용될 특정 유전자 부위 추출
④ 유전자의 양을 늘리는 증폭 과정을 거친 뒤 유전자(DNA) 염기 순서 분석
⑤ 모니터에서 두 사람의 유전자 염기 순서 대조
⑥ 유전자 검사 결과 출력.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을 제기한 조선일보 기사에 대해 채 총장이 정정보도 소송으로 맞서면서 양측의 진실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차영 전 민주당 대변인과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 사이에도 친자 확인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 같은 논란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유전자 검사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서 친자 확인에 유전자 검사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91년. 지난해 5000건 이상 제기된 친자 확인 소송에서 유전자 검사가 판결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서울대 의대 이윤성 교수(법의학)는 “유전자 검사가 친자 여부를 잘못 판정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기 때문”이라며 “서울대 법의학 교실도 20여 년 전부터 친자 확인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법원에서 우리 판정 결과가 부정된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친자 확인 또는 부인(否認) 소송에서 유전자 검사를 받지 않는 쪽이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 법무법인 청파 장성환 변호사는 “친자 소송에선 대개 유전자 검사를 통해 혈연관계가 명확하게 인정된다”며 “끝까지 검사에 불응하면 재판에 불리한 심증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2009년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한 친자 소송에서도 유전자 검사를 받지 않은 YS가 재판에서 졌다. 서울가정법원은 2011년 2월 50대 남성을 YS의 친아들로 인정했다. 김씨 측이 YS의 친아들이라고 주장하며 내놓은 증거의 일부가 인정되고 YS가 유전자 검사 명령에 응하지 않은 점 등이 감안된 판결이었다.

당사자가 검사 거부 땐 강제할 방법 없어

 혼외 자녀가 친자 소송을 낸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도 유전자 검사를 거부해 재판까지 갔고 결국 패소했다. 스카이법률특허사무소 김태민 변호사는 “친자 소송에서 관련자의 증언 등 여러 가지 증거가 사용될 수 있지만 가장 신뢰도가 높고 시간·비용 측면에서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유전자 검사인데, 당사자가 유전자 검사를 거부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는 것이 최대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유전자 검사 명령을 받았을 때 정당한 이유 없이 검사를 거부하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거나 30일 범위 내에서 유치장에 갇힐 수도 있으나 실제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친생자 확인이나 부인 소송이 크게 느는 추세다. 2002년 2624건에서 2012년 5276건으로 10년 새 배 가까이 증가했다(대법원 통계). 소송 건수가 급증한 것은 유산 상속을 둘러싼 가족 갈등이 주된 원인이다. 개방적 성문화 확산으로 불륜도 늘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혈연 관계 확인이 쉽고 정확해진 점도 증가 이유로 꼽힌다.

 다양한 이유로 유전자 검사를 받는 가운데 그 결과는 때때로 당사자들을 망연자실(茫然自失:제 정신을 잃고 어리둥절한 모양)하게 한다.

 김모(51)씨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20년이나 키워온 딸이 자신의 혈육이 아니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직업 군인이던 김씨는 20년 전 자신의 잦은 지방 근무로 아내가 혼자 사는 것을 우려해 친한 후배에게 남는 방을 세로 내줬다. 그 후 아내가 낳은 딸을 김씨는 애지중지 키웠다. 가정불화로 다투던 중 아내는 홧김에 “당신이 사랑하는 딸이 세 살던 후배 딸”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혼소송과 함께 친자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유전자 검사 결과 딸이 아무 혈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멘붕’(멘탈 붕괴) 상태에 빠졌다.

 데려다 키운 자식과 유전자 검사 후 인연을 끊은 경우도 있다. 불임 남성인 김모(61)씨는 40년 전 우연히 집 앞에 버려진 아이를 발견했다. 정식 입양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아들로 출생 신고를 마친 뒤 친자식처럼 길렀다. 몇 년 전 아내가 숨지자 아들은 김씨에게 폭력·협박을 일삼으며 재산분할을 요구했다. 최근 김씨가 재혼하려 하자 “씨도 없으면서 결혼해서 뭐하냐”며 모욕적인 말까지 했다. 배신감을 느낀 김씨는 법원에 소장을 냈고 재판에서 이겼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김씨와 아들이 친자 관계가 아님이 입증돼서다.

친자 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는 부 또는 모와 자녀의 유전자 지문(DNA fingerprinting)을 ‘찍어’ 같은 핏줄인지를 밝혀내는 작업이다. 유전자 지문을 유전자 프로필(DNA profile)이라고도 한다.

미국의 범죄수사 드라마 ‘CSI 마이애미’에서 수사 대상을 좁혀 나갈 때 알리바이나 손가락 지문 이상으로 자주 사용하는 유전자 감식과 친자 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는 원리와 방법이 동일하다.

 유전자의 본체인 DNA는 ‘디옥시리보 핵산’의 약칭이다. DNA는 사람을 비롯한 생물의 핵(核)에 존재한다. 유전자 검사 뒤 ‘DNA(유전자) 일치’란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 ‘친자 관계가 맞다’는 의미다.

 친자 확인을 위해 유전자 검사를 할 때 양 당사자 DNA의 모든 염기 서열(순서)이 일치하는지를 검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염기 서열이 완전히 같은 사람은 ‘유전적으론 동일한 사람’인 일란성 쌍둥이뿐이다. DNA의 염기 서열을 전부 밝히는 것은 지놈(genome) 연구다. 최근 국내 학자들이 밝힌 ‘한국 호랑이의 지놈 지도’가 한 예다.

 일반적인 유전자 검사에선 DNA의 극히 일부를 분석해 패턴(밴드)의 일치·불일치를 판정한 뒤 이를 확률적으로 추정한 것이다. 유전자 검사업체인 ㈜휴먼패스 윤형원 실장은 “두 사람의 DNA 중 16개 부위(좌위)를 검사하면 친자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며 “16개 부위 중 한 부위라도 일치하지 않으면 친자가 아닌 것으로 판정된다”고 말했다.

 1∼2개 부위가 불일치하면 돌연변이의 결과인지 확인한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친자로 최종 판정됐다면 친자 관계가 아닐 확률은 4조7000억 명 중 1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친자 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는 의외로 간단하다. 양 당사자의 샘플 채취부터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두 사람의 혈액에서 추출한 유전자를 대조하면 검사의 정확도가 가장 높다. 모근(毛根)을 채취해 샘플로 사용하기도 한다. 머리카락엔 DNA의 핵이 없으므로 두피가 일부 남아 있어야 유전자 검사가 가능하다. 특수 스티커를 손등 같은 피부에 붙였다가 떼어낸 뒤 스티커에 묻은 표피(表皮)세포를 이용해 검사하기도 한다.

비용은 두 사람 하는 데 30만원 선

이론적으론 세포 1개만 있어도 유전자 검사가 가능하다. PCR(중합효소연쇄반응) 장비를 이용해 유전자(DNA)의 양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엔 6∼7곳의 유전자 검사 기관이 영업 중이다. 검사 기관은 보건복지부의 허가를 받아야 업무를 할 수 있다. 최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검사 비용이 줄었다. 검사비(2인 기준)는 30만원가량이다. 검사 결과는 6∼8시간 만에 나오지만 판정이 애매하면 재검사도 실시한다.

 유전자 검사는 한국전쟁, 제주 4·3사태 등의 사망자 신분 확인에도 유용하다. 유골에서 채취한 유전자와 후손일 것으로 짐작되는 사람의 유전자 대조를 통해서다. 대개 100년 이하의 유골에선 검사에 필요한 유전자를 얻을 수 있다.

 서울대 의대 이숭덕 교수(법의학)는 “유전자 검사라고 하면 유산 다툼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긍정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사례도 허다하다”며 “지하철 화재 사건이 났을 때 사망자의 신원을 감별했고, 종군위안부로 캄보디아에 끌려갔던 훈 할머니에게 1997년 여동생을 찾아줬으며, 2006년 서울 서초동 서래마을에서 발생한 프랑스 영아 살해사건 당시엔 영아가 누구의 아이였는지 밝혀줬다”고 말했다.

 유전자 검사는 1984년 9월 영국 레스터 대학의 유전학자 앨릭 제프리스 교수에 의해 개발됐다. 당시 34세이던 제프리스 교수는 유전질환이 가계(家系)에 어떻게 전해지는지를 밝히기 위한 연구를 했다. 원래 의도했던 연구는 실패했으나 대신 세계 최초로 유전자 지문을 찾아냈다. 그가 1985년 3월 과학 전문지 ‘네이처’에 유전자 검사법을 발표했고, 이후 살인·강간범을 찾아내고 이민자의 국적 논란을 잠재우며 친자를 판정하는 등 다방면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1990년엔 브라질의 한 무덤에서 발굴한 뼈의 유전자를 검사한 뒤 무덤의 주인공이 조셉 멩겔레란 사실을 밝혀냈다. 멩겔레는 40만 명에 달하는 아우슈비츠 수용자를 가스실에 넣거나 생체실험을 한 인물이다. 1998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을 입증하는 데도 쓰였다. 미국의 시민단체 ‘이노센스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무고한 수감자 232명을 석방시켰다.

 쇠고기가 한우인지 감별하는 데도 유전자 검사가 쓰인다. 도축 과정에서 쇠고기 일부를 떼어내 유전자 지문을 찍은 뒤 데이터베이스(DB)에 입력해 둔다. 소비자가 ‘이거 정말 한우 맞아?’라고 의혹을 제기하면 해당 쇠고기에 대해 유전자 검사를 실시한 뒤 DB에 저장된 유전자 지문과 비교, 진위 여부를 판정한다. 가짜 포도주·가짜 약을 판별하는 과정에도 동원된다. 동물이든 세균이든 상관없이 모두 고유의 유전자 지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늘 진실찾기의 보증수표인 것은 아니다. 미식축구 선수 O J 심슨의 혈액과 피살 현장에서 발견된 아내 등 두 여성에서 채취한 피의 유전자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재판 결과는 무죄였다. 혈흔 채취 과정에서 백인 경찰관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등 절차적 오류가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글=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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