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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함께 진단해 본 세태|「엑스포」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올해는 세계로 향한 출국의 문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활짝 열렸던 해. 10월말 현재로 6만3천13명의 한국인이 김포공항을 비롯, 부산의 부관「페리」를 타고 외국의 바람을 쐬었다.
이 숫자는 69년 한해 동안에 나들이 한 인원 3만8천4백18명에 비해 약 배가 많은 것.
나들이한 사람이 많았던 것은 일본에서 있은「엑스포70」때 재일 교포의 초청을 받은 사람이 9천7백7명이나 되었던 때문이기는 하지만 이 숫자를 빼 놓은 올해의 출 국자 수는 작년의 1백70%가 된다.
좁고 좁은 출국의 문을 비껴 나간 사람을 출국 목적별로 나누어 보면「엑스포」구경을 간 사람이 방문과 시찰을 합해 1만9천4백48명으로 전체의 3분의1에 해당하고 공무원의 출장이 2천9백17명, 상용이 8천4백27명, 군용 5천2백48명, 외교 1천3백39명, 체재·유학 등이 1천17명, 취업 및 거주(이민)가 1만8천1백94명, 종교·문학·체육이 5천4백55명, 이 밖에 8백85명이 다녀 왔다. 숫자에서 보면「엑스포」참관과 취업·거주 이외에 가장 많은 것은 10억 「달러」수출의 역군인 상공인들.
이 때문에「엑스포」가 열렸던 여름 한철은 시정의 화제가 모두「엑스포」에 쏠려 이것을 구경 못한 사람은 마치 대열에서 뒤 처진 느낌을 주었다. 거리에는「엑스포·마크」가든 담배·「라이터」·「볼·펜」·구두 주걱 등이 판쳤다. 재빨리「엑스포」란 간판을 상호로 쓰는 곳도 나타났다. 마치 우리 나라에서「엑스포」를 치른 듯 들 떠 있었다.「엑스포」참관의 경우 일반 방문·초청 자 등에서 3천7백77명 가량은 각 기관의 인사 치레로 명색 시찰 명목으로 다녀왔으나 그 들이 모두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는 궁금 거리이다.
「엑스포」를 보러 갔던 사람 중 실제로 70여 개의 세계 각국 관을 다 들러 본 사람은 한사람도 없고, 15개관 이상을 본 사람도 드물 지경.
대부분은 한국 관을 보고 미국 관·「캐나다」관·일본 관·「이탈리아」·서독·「프랑스」등에 그치고 남는 시간에 일본 각지를 여행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와는 달리 돌아올 때「호텔·로비」마다 물건「트렁크」가 가득 쌓이고「오오사까」비행장에서 KAL기 떠나는 시간엔 짐짝이 산더미처럼 밀려 세관 직원들이 야릇한 미소를 자아냈다.
이틈에 묻어 온 것 중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카·스트레오」와「카세트」.
7, 8월부터 유행하기 시작한「카·스트레오」는 9, 10월까지 절정을 이뤄 자가용 중에서도「카·스트레오」가 없으면 행세 못 할 정도. 이 많은「카·스트레오」중에는 저속한 왜 색 가요와「섹스」녹음이 끼어 있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외국에 나가기가 힘든데 가장 큰 원인이 있기도 하지만 일본에서의 단체 여행객의 태도나 여행사의 태도도 문제점이 많았다.
「엑스포」가 폐막될 무렵에 1백20명의 단체를 알선한 모 여행사는 돈벌 궁리에만 치우쳐「오오사카」에「호텔」도 예약하지 않아 1백20명이 민단 사무실 의자를 치우고 돗자리를 깔고 자는 아우성을 쳐 나라 망신을 시키기도 했으나 당사자들은 불평조차 않는 미덕을 보이기도 했었다.
그러나「엑스포」의 열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왜 색 가요의 뒷수습이 남아 한때 경찰이 단속의 손을 댔으나 잡고 보니「높은 어른들」의「카·스트레오」가 많아 흐지부지 됐다.
한가지 이 같은 해방 후 25년만의 최대 인파의 출·입국 사무에서 한사람의 낙오자도 없던 것은 큰 자랑이었다.
치안 국 외 사 과장 김봉균씨는『큰 자랑이다. 국민들의 단결을 과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엑스포」뒤에 밀려들어온 저속한 문화에 대해 고려대학교 사회 조사 연구소의 한형수씨는『우리 사회가 대중사회에 접어드는 경향을 보인 것』이라고 말하고『통속적인 국민의 의식구조를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끄는 경향이 외국을 다녀오는 지도층에서 시작됐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흔히 우리 사회가 일본의 문화를 직수입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다고 저속한 문화를 아무런 소화 능력도 없이 직수입하는 것은 위험한 문제로 예견되는 만큼 국가시책으로 문화의 의식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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