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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함<외대교수·언어학>한해가 저물어 간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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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여기 또 한해가 저물어 간다.
철없는 아이들「샌터」를 기다리며 가슴이 부풀고, 또 며칠 있으면 한 살만큼 더 어른이 된다고 마냥 좋아라 한다.
대학가의 여기 저기선 사은회가 한창이다. 뛰쳐나갈 수 있는 자유를 눈앞에 두고, 그러나 애석함과 또 두려움이 섞인 착잡한 심정 가운데, 그래도 스승의 은혜는 저 버리지 말자는 갸륵한 잔치의 자리다.
여 학생들은 깜찍한「미니」맵시를 아낌없이 팽개치고 하나같이 아리따운 새색시 차림으로 등장한다. 몸가짐도 한결 정숙하구나. 조용의 말이 아니라도「예전엔 미처 몰랐던」아름다움이 거기 보인다.
여기 비해, 남학생들은 교정에서의 모습과 덜 다름이 없는 차림새이다. 다만 한가지 다른 게 있다면 그것은「오늘이야말로 교수들과 우리와 동등하게 행동할 수 있는 날」이라고 버티는 듯한 자유 분방한 명랑성(?)이다. 귀엽기도 하고 아슬아슬 하기도 한 그런 장면들이다. 그 중엔, 교양 없는 언사들이 교환되는 가운데 얼근히 상기된 모습도 몇몇 눈에 뛴다. 평소에 얌전하던 학생들은 여기서도 점잖은 가운데 유쾌하면서도 뜻깊은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애쓴다.
문득 흔히들 하는「학교에의 우등생은 사회에서의 열등생」이라는 말을 생각게 된다. 이들은 거짓말을 모르고 요령이 없다는 말일까? 그래서 끝내 청빈하고 고독하고 희생적인 생활 속에 묻혀 살게 된다는 말일까? 그렇다면「학교에서의 열등생」이 낮에는 공직에서 적당히 요령 껏 살고 밤이면 늦도록 술과 벗하며 호언 장담을 즐기고, 그러면서도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신기한 기술을 재빨리 습득하게 될 때「사회의 우등생」이 되었다고 하는 것일까? 처자는 가난과 외로움 속에 버려 둔 채 자기만이 자유와 낭만을 쫓으며 사는「에고이즘」의 화신도 어쩌면 이 부류에 속하는「사회의 우등생」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에 잠겨 있을 때『여학생들을 위해 한 마디를』하는 사회자의 부탁을 받는다.
『아름답게 살아가자』고 나는 당부한다.『착하게 살 때 아름다움이 있고 미소를 지을 때 아름다워 지고 참고 믿으며 기다릴 때 아름다움이 꽃 필 것이라…』고.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여성들에게만 요구해 온 것은 이미 지나간 세대의 일이다. 아껴 주고 위 해주고 너그러이 봐주는 남성들의 깊은 애정과 넓은 사나이다움이 있을 때 비로소 한 여성의 아름다움이 그 보람을 찾아 열매를 맺게 된다 부디 오늘밤의 어여쁜 여학생들의 모습이「신데렐라」의 허황된 꿈으로 화하지 않기를, 그리고 그들과 운명을 같이할 청년들의 앞엔 오직 밝고 곧은길만이 있어 주길 바라면서 자리를 뜬다.
오늘이 다 저물었음은 보다 밝은 내일 아침이 우리 모두를 기다리기 때문이리라 믿으면서 세모의 밤길을 나는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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