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김승연 회장 일부 혐의 무죄" 파기환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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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대법원이 김승연(61) 한화그룹 회장에게 인정된(2심 기준) 핵심 혐의인 3200여억원 업무상 배임 중 최소 345억원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다른 나머지 대부분의 혐의는 원심대로 유죄로 인정됐다.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11월 7일까지 구속집행정지 처분을 받은 김 회장은 불구속 상태에서 다시 재판을 받게 된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26일 김 회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3년과 벌금 51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경영상 판단에 따라 부실한 계열사에 대해 지원한 행위를 배임죄로 처벌하면 안 된다”는 한화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심은 ▶동일석유 주식 저가 매각(143억원) ▶한유통과 웰롭 등 차명 계열사 부동산을 내부거래(620억원) ▶NHDL 지분 고가 매수(271억원) ▶한유통 채무 연대보증(1916억원) ▶한화석유화학 여수 토지 저가 매각(272억원) 등을 통해 다른 계열사에 3200여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를 인정했다. 이 밖에 차명 계좌를 운용해 양도세 13억원을 내지 않은 점(조세포탈)과 공정거래위원회에 위장계열사 4곳에 대한 관련 자료를 내지 않은 혐의(공정거래법 위반)도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기업집단을 구성하는 개별 계열사도 별도의 독립된 법인격을 갖춘 주체로 각각의 채권자나 주주 등 다수의 이해관계인이 관여하고 있다”며 “부실 계열사 지원으로 생기는 경제적 부담이나 위험에 대해 상응하는 보상이 마련되지 않은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지원을 받은 계열사는 김 회장 일가의 개인회사여서 한화그룹 소속 계열사 전체를 위한 행위였는지도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일부 배임액 산정에 오류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부실이 쌓인 한유통이 2004~2006년 58차례에 걸쳐 1916억원을 대출받는 과정에서 한화유통 등 다른 계열사가 지급보증을 서줬는데 일부가 중복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부실 계열사가 새로운 대출을 받아 기존 대출을 갚는 과정에서 1차 대출에 보증을 서준 회사가 두 번째 대출에도 그대로 보증을 유지했다면 새로운 손해가 생긴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제외되는 금액은 345억원으로 추산됐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한화석유화학 소유의 전남 여수 부동산을 다른 계열사에 싸게 넘긴 혐의에 대해서는 “땅값 감정이 잘못됐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를 제대로 심리하지 않았다”며 재심리할 것을 요구했다. 이 부분은 파기환송심에서 땅값 재감정 결과에 따라 유무죄가 결정된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에 따라 한화그룹으로서는 김 회장에 대해 실형이 확정돼 2년6개월 이상 총수 공백사태가 지속되는 최악의 경우는 일단 피했다. 구속집행정지가 11월 7일까지라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다. 한화그룹 측은 이날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서 성실히 소명에 임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먹구름이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니다. 항소심에서 인정된 배임액 3200여억원 가운데 2500억원 이상이 사실상 확정됐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정한 배임죄 양형기준에 따르면 배임액이 300억원 이상이면 기본 형량이 5~8년이고, 감경요소를 고려해도 4~7년의 형을 선고해야 한다. 일부 배임액이 줄었지만 큰 금액이 아니어서 파기환송심에서 형량이 얼마나 줄어들지 주목된다.

 김 회장은 일단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자격은 갖췄다. 형법상 징역 또는 금고 3년형까지에 대해서는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조직법에 따라 양형기준을 벗어난 판결을 하는 경우 판결문에 이유를 적어야 하는 점이 부담이다.

최현철·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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