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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머스 선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크리스머스·시즌」이라기보다 선물「시즌」이 시작 됐다. 백화점에 들어가 보면 돈들이 없다는 것도 거짓말 같이 느껴진다. 그만큼 선물용 상품을 사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선물 받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사실은 선물이란 받는 면보다도 주는 면에 더 많은 즐거움을 안겨 줄 수 있어야만 한다. 선물의 값은 선물을 주는 마음씨에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칠」내외가 금혼식을 맞았을 때, 그의 자녀들은 황금색 장미를 심은 산책길을 기념품으로 선사했었다. 이것을 받았을 때 「처칠」부인의 눈에는 눈물이 괴었다 한다. 그러나 이처럼 기뻐하는 부모를 보고 그 자녀들은 또 얼마나 더 기뻐했었겠는지.
영국의 어느 병원장이 퇴직했을 때에는 네 개의 나무를 선사 받았다. 봄을 알리는 벚꽃 나무, 여름에 꽃을 피게 하는「유카리」나무, 가을을 아름답게 물들여 주는 단풍나무, 그리고 겨울을 포근하게 만들어 주는 노각나무(금수 목)들이었다. 이처럼 값진 선물도 따로 없을 것이다. 비슷하게 감동적인 얘기로는「크리스머스」선물로 남편의 시계 줄을 사주기 위해 자기 머리를 잘라 팔고, 남편은 또 자기 아내의 아름다운 머리를 위해서 시계를 팔았다는「오·헨리」의 소설이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왠지 이 소설이 그려낸 고운 마음씨 사라지고 여기서 풍자된 요소만이 살아 있는 것 같다.
선물의 값은 마음씨가 결정한다. 그러나 요새는 선물을 주는 편에서나 받는 편에서나 마음씨는 별로 문제삼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상품으로서만 주고받는다. 그러니까 선물이 아니라 상품만이 오가고 있는 셈이다.
상품은 돈 많이 주고 산 것일수록 좋다. 따라서 비싼 물건일수록 더 환영을 받게 마련이다. 마음씨가 선물의 값을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다. 선불의 값으로 주는 사람의 마음씨를 헤아리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야박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때문이라고 할까.
선물은 대가를 바라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저 감사의 마음씨의 한 표현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요새는 반듯이 어떤 대가를 바라고 보내는 선물이 더 많다. 선물이 완전히 상품화한 것이다.「크리스머스」까지도 이런 선물을 보낼 수 있는 구실이 된다 하여 반기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게 금권만능의 시대의 선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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