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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삼 여행기<미 영 사모아도서 제5신>|무희의「프로포즈」에 나그네는 수줍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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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래와 춤을 목숨처럼 사랑하는 사모아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우선 흘러·쇼라는 춤을 보기로 했다. 이 춤은 하와이의 훌라·댄스와도 같이 허리를 움직이는 것인데 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하면서도 구미의 음란한 에로티시즘과는 차원이 다른 어떤 춤의 순수성이 엿보인다.
그 까닭은 이 사모아의 춤은 원시성에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허리를 묘하게 움직이는 기교가 미풍에 흔들리는 야자나무의 잎처럼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이들의 무용은 문학과 음악이전의 원초적인 예술이 아닐까, 여러 무희들이 아름다운 육체미를 자랑하면서 관객들을 향해 마치 윙크를 던지며 차밍한 포즈를 취하였다. 모두들 황홀하여 쳐다보고 있는데 춤이 다 끝나자마자 유심히도 나를 보던 예쁘장한 무희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무희답지 않게 약간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건넸다.
이윽고 관광객들도 한바탕 춤들이 벌어졌는데 알고 보니 이 무희는 나와 함께 춤을 추고 싶어서 그 러는것 같았다.
남해의 이글이글 타는 태양의 생리를 닮아서 인지 이 무희의 눈동자는 빛나고, 균형 잡힌 몸매는 율동적인 춤에 동화되어서 몸 움직임에는 푸짐한 리듬이 흐른다. 가무잡잡하면서도 매혹적인 살결은 어딘가 인어를 연상시킨다. 모두들 관객들과 어울려 흐드러지게 춤이 벌어졌는데 한바탕 이 아리따운 무희를 얼싸안고 멋들어지게 춤을 추고 싶은 충동이 솟구치기도 했다.
그 무희는 자기에게 마치 저 베버의「무도회의 권유」의 로맨틱한 프로포즈처럼 춤을 추자고 권하지 않는 것이 아쉽다는 듯이 그 이글이글 불타는 정염의 눈동자로 나를 직시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낮선 나라 남녀끼리 만나면 으레 사랑의 불꽃을 튀길텐데 어쩌면 그렇게도 무표정하냐는 듯이 나의 동정만을 살폈다.
이 무희는 내가 으레 가정을 가진 사람으로 볼 텐 데도 그런 것은 아랑곳없이 이 한밤을 남들처럼 멋지게 즐겨보자는 뜻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2만 여명 밖에 안 되는 이 미국 사모아 의 원주민이란 본래부터 이렇게 환락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미국의 현실 향락주의를 본받아서 그런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일생을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인생 유 일의 목적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사모아에서는 세계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춤을 더욱 장려하고 발전시키겠지만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을 지닌 사모아 섬에서는 으레 춤이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해풍에 춤추는 나무들처럼 이 사모아 원주민들의 춤도 어쩌면 자연 발생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이들의 춤은 거의 기쁨의 율동이 넘쳐흐르는 것들이다.
여행의 기쁨을 맛보자면 그 나라 사람과 어울러 좀더 관능적인 쾌락을 즐겨야겠지만 남들처럼 세속적인 즐거움을 나누는 것보다는 세계를 조용히 관조하고 생활하면서 내 딴은 인문수업이랍시고 쏘다니고있는 터이다. 아직까지 세계 여러 나라 여자의 몸뚱어리를 얼싸안고 춤이나 추는 것은 그리 반기지 않았었다.
그래서 아름다운 무희가 함께 춤을 추자는 이 행운의 기회를 뿌리치고 다만 한 모퉁에서 그녀와 이야기만을 주고받았다. 그것은 나의 여행이 유람이 아니며 향락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들 사모아 사람이 받드는 터부(금기)의 사상보다 더 강렬한 금욕을 모토로 하지 않고서는 여행으로 세계를 정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터부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 말은 플리네시아 말인 타푸를 어원으로 하고 있는데 이 뜻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본래는 청정하여 더럽힐 수 없는 신성한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이 사모아 사람들은 지금 기독교로 개화했다고는 하지만 샤머니즘과도 같은 뜻으로 어떤 물건을 남이 함부로 손대지 않도록 하는 금기로서의 터부사상을 지녔던 여운이 아직도 어느 구석에 깃들여 있는 듯이 보이건만 이 무희는 그런 것을 모르고 최대한의 쾌락을 누리자는 것이다. 이젠 이렇게 시대가 바뀐 가 보다.
이 무희가 추는 허리춤을 본 뒤에도 마침 하와이로 공연하러가기 위하여 연습하고 있다는 사모아 고유의 민속 무용도 보았고 레슬러처럼 무지무지한 남자들의 군무도 보았는가 하면 격정적인 여자들의 합창도 들었다. 한결같이 남해의 정열이 담겨 있었다. (다음 회부터「타이티」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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