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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림과 서러움의 1년 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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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민학교 다닐 때는 흰 운동화가 가장 큰 소원이었고 작년 봄만 해도 배가 고파 풀 속에 오래 있을 수 없었던 한 소년의 목에 이제는 두 개의 금메달이 걸렸다.
아시아 수영 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조오련(18·양정고 2년)은 기적을 두 번 일으킨 신화의 주인공.
첫날 자유형 4백m에서 아시아 기록을 3초7 단축, 4분20초2로 50년 한국수영 사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조는 14일 1천5백m에서도 아시아대회 기록을 10초3, 한국최고기록을 무려 38초2를 단축한 17분25초7로 우승, 국제대회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2관 왕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낳고 말았다.
지난 68년 11월 수영을 하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속내의 한 벌과 책 두 권, 단돈 2천7백원을 갖고 무작정 상경한 조는 주림과 설움을 안고 불과 1년 반만에 한국 스포츠 사에 신데렐라·보이로 탈바꿈했다.
전남 해남군 해남 읍 학동 리 조흥관(68), 김금만(61)씨의 10남매 중 5남으로 출생한 조 선수는 해남 고 1년 때 학교를 중퇴, 그의 마을 김강곡 저수지에서 개헤엄으로 키운 그의 실력을 기필코 달성하겠다고 서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서울 거리에서 헐벗고 굶주리며 헤매던 오늘의 스타를 키운 것은 처녀 누님이었다.
10남매 중 막내인 조선수의 바로 위 누나인 현숙양(21·서울 용산구 한남동 산75·수도고등 성경학교 재학)이 조 선수를 서울에서 뒷바라지 해온 사실이 밝혀졌다.
현숙 양은 조 선수보다 먼저 서울에 올라와 밤에는 학교를 다니면서 낮에는 껌고 양말 행상으로 조 선수를 양정고에 편입시켜 학비를 대 왔다.
현숙 양은 뒤따라 서울로 온 동생을 만류, 하향하라고 야단쳤으나 끝까지 수영으로 대성하겠다고 고집하여 누님은 낮에는 행상을, 밤에는 학교 다니는 가난한 처지로 서로 붙들고 울기도 수십 차례였다.
어릴 때부터 마을 냇가에서 하루해를 보내곤 하던 조 군은 늘 여름이면 물이 귀에 들어가 양쪽 귀를 항상 앓아오곤 했다고. 체육회 신인발굴에서는 순발력과 스피드 부족이라 판정, 낙방의 시름을 맛보았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삼 각지 페인트 사에 월 4천5백원에 취직, 이때부터 YMCA 풀까지 걸어 다니며 수영을 연마했다.
이때 조는 체중을 줄이기 위해 수영을 하던 장형숙씨(48·상업)와 장씨의 친구 원종훈씨 (48·상업), 정일영씨(48·공업)의 도움을 받아 세 집을 전전, 의식주를 해결했다.
조 군이 방콕대회에 출발직전인 지난 2일에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는『이번 기회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기필코 금자탑을 이뤄, 큰형이 고생하셨으니 오토바이로 낚시질을 하게 해 주겠습니다』고 적혀 있다. 올해에 들어 조 군은 비약적으로 성장, 자유형 4m 등 5개 종목에 무려 15번에 한국 신기록의 경신, 신기록 제작기로 각광을 받았는데 이번 최초의 해외원정경기에서 외로움과 패기 속에 자랐던 18년의 울분을 한꺼번에 씻었다.
세계 톱 수준을 뽐내는 일본 수영 전문가들은『한국에 이런 선수가 있는 것에 놀랐다. 그의 레이스·폼은 일본 선수보다 한발 앞선 특수 영 법이었다』고 혀를 휘둘렀고, 조의 승리는 그가 괴롭고 서러운 파노라마 같은 지난날을 억척 같이 이겨낸 눈물겨운 인내심과 스태미너에서 오는 영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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