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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이요섭<영 비스뉴스 특파원>|본사 독점수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문이 열리더니 중공 제AK-47소총을 든 6명의「베트콩」이 들어섰다. 이들은 나에게 조반을 날라다 주었다. 밥과 개구리 다리-.「메뉴」는 변함없었다. 하루에 두끼씩, 죽지 않을 만큼만 허기를 채워줬다.
이곳은「베트콩」의 중간사령부로 보였는데 절간 같았다. 주위가 너무 조용해서 절간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총부리를 겨누고 나를 감시하는「베트콩」들은 계속 침묵만을 지켰다. 무엇인지 말을 걸어주었으면 되려 속 편할 것 같았다.

<비몽사몽가수 이틀>
이틀동안 내가 한 일이라곤 애꿎은 개구리다리볶음을 씹는 일과 스르르 가수상태에 빠져 비몽사몽 하는 일 뿐이었다. 이따금 담배를 달라면 선뜻 꺼내 주고 불을 당겨줬다. 이럴 때마다 나는 거물급 포로 같은 기분이 들었다. 춥다는 시늉을 하면 뜨거운 물도 끓여다 대령하는 것이었다. 이틀동안 대 소변을 보지 않은 것이 신통했다.
11월25일-. 사흘째 되는 날에 소변이 마렵다고 말했다. 감시반은 기계적으로 판초자락을 펄썩 젖히면서 오줌을 누라 했다.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어린애 부녀자 할 것 없이 동네사람들이 울밖에 쭈그리고 앉아 나를 빤히 들여다보는 게 아닌가. 걸친 것도 말이 아니거니와 내 몰골이 낮도깨비 같았던 모양이었다.
거울이 없어도 관람객(?)들의 표정으로 미루어 그럴성싶었다.

<구경거리 노릇에 분통>
어떤 짓궂은 녀석은「판초」자락을 밖에서 걷어 젖히고 고개를 쏙 디밀며 나를 관찰했다. 창피해서 나는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면 벽으로 누운 채 분통을 참다 잠이 들곤 했다. 사흘째 되는 날에 드디어 장교 티가 나는 낯선 자가 나타났다.「노트」쪽을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심문을 시작할 눈치였다. 계급장 없이 허리춤에 권총을 쑤셔 넣고 깡마른 체구에 눈만 살아 움직이는 품이 독종 정보장교 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나를 한참 노려보더니『어느 나라 사람인가』부터 물었다. 내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니까「프랑스」어로 물었다. 다시 고개를 저으면서『나는 영어밖에 모른다』고 했다. 장교는 난처한 듯 씩 웃더니『그럼 중국말은 하느냐』고 물었다.『중국어는 모르지만 한자는 이해한다』고 대꾸했더니 중국어 통역을 데려왔다. 그도 역시 매한가지 월맹군복차림이었다.

<심문에「국제기자」일관>
그는 대뜸 나의 국적을 캐물었다. 국적이란 글씨를 써서 물었다. 나는『아부지도적자』(적자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라고 썼더니 큰소리로 신경질을 부리기에『국제기자』라고 쓰고 『이걸 묻느냐』고 딴전을 피웠다. 벙어리의 대화 그것이었다.
주소라고 쓰기에 향 항이라 쓰고 성명은 이요섭 이라고 표기했다. 내 이름의 영문표기가 YOSEP이어서 국적이 아리숭하게 넘어간 것이 천 행이었다. 나이는 33년 생-.
가족은 처 아들딸이 있다고 쓰고 이름은 대지 않았다. 월급을 묻기에『US200불』이라고 썼더니 눈을 크게 떴다. 많아서 놀란 표정-.『네가 타고 온 자동차는「론·놀」이 준 것이냐』고 따지기에 월세 1만6천「리엘」에 세 낸 것이라고 했더니『비싸다』고 말했다.
『너의 진술이 거짓임이 드러나면 없애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기에『절대로 사실이다』고 담담히 말하고 이것저것 캐물어 올 때마다 한자교환이 어렵다는 듯이 동문서답 식으로 둘러 붙이면서 시간을 끌었더니 귀찮다는 듯 심문을 끝내버렸다.

<한달 뒤에 석방하겠다>
나는「펜」대를 쥐고『아 방 조기귀가 원, 감사』(나는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 고맙다)이라고 힘주어 썼더니『12월30일까지는 풀어 주겠다』고 막연한 시한부 석방을 약속했다.
우선 내 보내준다는 말에 안도의 식은땀이 흘렀으나 한달 동안 석방을 보류한 것이 수상쩍었다. 그 동안에 내 정체가 들통나면 나무아미타불이 아닐는지.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놈들이 죽일 생각은 없는 모양이구나』하는 한 오라 기 희망을 키우면서 기운을 내었다. 심문이 끝난 날부터 그들은 나의 팔목에 감긴 포승을 풀어줬다. 자유롭게 마을을 돌아다닐 수 있게 해줬다.

<닷새만에 처음으로 용변>
하지만 뒤에는 총을 멘 감시병이 꼭 따랐다. 이곳 중간사령부엔 월맹정규군 약 20명이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판명됐다. 나는 일부러 감시병을 의식 않은 채 하면서 풀숲으로 들어가 대변을 보기도 했다. 닷새만에 처음으로-. 하늘을 보고 누는 대변은 퍽 시간이 걸렸다. 종이가 있을 리가 없어「바나나」껍질로 밑을 닦고 막 일어서려는데 앞에 총구멍이 떡 버티고 있어 섬뜩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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