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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독자노선 선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쿠바 수상 카스트로는 8일 밤 쿠바는 소련의 공산주의와는 판이하게 다른 독자적인 민족적 공산주의국가로 발전할 길을 택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이날 밤 아바나방송은 쿠바가 자국의 환경에 적합한 사회주의노선을 안 출 해야한다고 말한 카스트로의 연설을 되풀이 보도했는데, 그는 이 연설에서 쿠바경제는 소련과의 무역불균형에서 초래된 외채의 예속 하에서는 지탱할 수 없을 것임을 지적하고, 앞으로 쿠바는 쿠바 특유의 사회주의를 다각적으로 형성해야 하겠지만 어쨌든 쿠바는 선진사회대열에 끼게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카스트로의 이 언명은 두 가지 의미에서 주목을 끌게 하는 것이다. 그 첫째는 쿠바가 자국의 환경에 알 맞는 독자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입안, 실천하겠다는 것이고 그 둘째는 쿠바가 소련에 대한 경제적 예속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점이다.
카스트로는 폭력혁명으로 집권한 후 매사에 반미색채를 선명히 노출하였다가 미국의 미움을 사게되자 국제정치상 고립을 면하기 위해 소련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급작스러이 좌경화, 쿠바를 공산주의 체제로 몰고 간 사람이다. 정통적 공산주의의 교육과 훈련을 받지 아니한 카스트로는 반미투쟁의 방편으로 소련에 깊숙이 의존, 62년 말에는 세계를 제3차대전 일보전의 아슬아슬한 사태로까지 몰고 간 장본인의 한 사람이지만, 대외적으로 소련에 의존하면서도 소련형 사회주의체제의 쿠바 이식을 달게 받아들이고자 하지 않았었다. 이 점, 카스트로는, 스탈린 시대 코민포름으로부터 파문 당한 유고슬라비아의 티토가 이른바 창조적인 마르크스주의를 제창한 것과 비슷하다. 56년 소련공산당 제20차 전당대회에서 흐루시초프는 그 유명한 스탈린 격하 연설을 통해 사회주의로 가는 길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48년 코민포름으로부터의 티토 축출이 잘못이었음을 은연중 시인하였다. 이때부터 공산주의 각국이 독자적인 사회주의건설을 추구하는 것은 공인된 사실이 되고 말았는데, 오늘의 공산국가들은 저마다 자신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정통을 걸어가고 있지만, 다른 나라들이 수정주의로 변질 타락하고 있다고 상대방만을 비난하는 설전을 벌임으로써 무엇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정통인지조차 알 수 없는 형편에 놓여있다.
금 차 카스트로의 언명은 이 혼란을 더 한층 심하게 해 주는 것인데, 소련이 다른 공산국가들에 소비에트형 사회주의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할 수 있는 시대는 이제 완전히 끝난 감이 더욱 짙은 것이다.
다음 소련의 경제적 지배에 대해 카스트로가 반기를 들었다는 것은 사회주의 선진국 대 후진국의 미묘한 대립관계를 드러내는 것으로서 흥미진진한 사실이다. 62년의 쿠바 위기를 계기로 미-소 평화공존 무드가 형성되자 소-중공 대립은 결정적인 것이 되고 말았는데, 그 동안 쿠바는 소-중공을 내왕하면서 경제적 실리를 추구했고, 나중에는 공산권 및 국제공산주의 운동에 있어서 독자적인 제3 블록 형성에 앞장서기도 했다.
반미 투쟁 때문에 이웃 미국의 거대한 시장에서 축출 당한 쿠바는 경제적으로 대소의존도를 심화시켰었는데 격심한 무역불균형은 외채의 누적을 가져와 쿠바 경제를 파탄상태에 몰아넣었다고 전한다. 여기 카스트로가 비명을 올리지 않으면 안되었던 소 이가 있는 줄 알지만, 소련에 대한 경제예속의 거부가 쿠바의 대 미주관계 내지 대 서방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소지를 마련하게 될는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에 속한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한 것은 카스트로의 대소경제의존 거부선언이 대국 소련으로부터 착취를 강요당하고 있는 후진사회주의국가의 동조를 사게 되리라는 것이고, 카스트로의 대외정책은 그들이 직면한 혹심한 경제적 핍박 때문에 훨씬 부드러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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