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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느질에서 성찰하는 느림과 여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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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유승훈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삶이 시계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자동차로 출근하면서 머릿속으로 하루 일과를 그려본다. 오전에는 회의와 갖은 공문 기안, 오후에는 자료조사, 협의와 미팅 등 그날 할 일을 촘촘히 떠올린다.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시간을 세분화하여 하루 업무를 검토해본다. 이후 퇴근할 때 시간을 대조하여 일의 성과를 체크하다 보면 불현듯 내가 시계 분침이 되어 하루를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시간의 강박감에 빠져 분초를 아끼며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그 자체가 시계다.

 시계가 된 사람들은 속도를 중요시한다.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을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계속해 ‘속도의 혁명’을 일구어낸 결과 이제 빛의 속도에 버금가는 ‘1초의 시대’로 진입했다. 한 스마트폰 광고에서는 1초 안에 수많은 이미지를 다운받고, 읽고 싶은 책 속에 파묻힐 수 있다고 말한다. 어느 회사에서는 스피드 경영을 상징하는 ‘1초 경영’이라는 경영철학을 주창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계 인간은 여전히 일의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하며,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기계의 출현에 몰입한다. 고성능 기계가 개발될수록 시간은 작게 쪼개지고, 그 사이에 배치된 업무는 시계 인간을 더욱 옥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시간이 사회를 지배할수록 시간에 반하는 일탈의 욕망도 커진다. 나를 관리하는 스마트폰을 강물에 냅다 던져본다거나, 사무실이 아닌 지리산 숲으로 출근하고 싶은 뚱딴지 같은 욕망들 말이다. 이런 충동이 나를 엄습해갈 무렵 우리 집 풍경에 작은 변화가 생겨났다. 어느 날 울긋불긋 다양한 원단들이 빨래 건조대에서 바람을 맞으면서 휘날리고 있었다. 거실 한쪽에는 반짇고리와 옷본, 시접 자도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아내가 손바느질을 시작한 것이다. 소파 한구석에서 바느질을 하는 아내를 보면서 나는 작심삼일이겠지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헌데 작심삼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엄마가 만들어준 파자마를 입고 거울 앞에서 폼을 잡는 모습을 보면서 짐짓 궁금증이 일어났다.

 “웬 손바느질이야. 옷가게에서 그냥 사지.” 나는 천에서 떨어진 보풀을 주우며 투덜댔다. 예전과 달리 아내는 정성스럽게 답했다. “좋은 옷은 많아도 내가 원하는 것을 살 수가 없어. 직접 바느질을 하면 내가 원하는 색깔과 문양을 가진 옷을 만들 수 있거든. 이렇게 하다 보면 마음도 정화되고.” 아내는 손바느질이 옷을 만드는 것 이상의 수행이고, 요새 손바느질을 통한 규방공예가 유행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 말을 듣고 나서는 아내의 손바느질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서투르고 느리지만 한 땀 한 땀 바늘로 천을 꿰매는 모습이 울퉁불퉁한 세월을 바느질로 공그른 우리네 어머니의 아우라를 제법 풍기고 있었다. 저녁마다 꾸준히 바느질한 덕에 수작업 제품도 늘어났다. 가족의 파자마가 모두 생산되었고, 침대 위에는 아내가 만든 작은 이불도 얹혀 있었다. 아이들도 엄마 옆에서 바늘귀에 실을 꿰면서 즐거워했다. 아, ‘1초의 시대’에도 손으로 만드는 느림의 즐거움이 만만치 않았다.

 시계 인간에게는 오히려 느림과 여유가 필요하다. 시속 300㎞의 초고속 열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에게는 오직 출발역과 도착역, 그리고 빠른 속도만이 보일 뿐이다. 과거 완행열차가 주었던, 느리지만 정겨운 풍광 속에서 샘솟았던 에너지와 아이디어는 속도에 묻혀버렸다. 속도에 대한 탐닉은 빠름의 맹신을 낳고, 달리기만 하는 시계 인간은 언젠가 시간의 절벽에서 추락할지 모른다. 갑자기 잔잔한 호수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싶고, 고즈넉한 곳에서 자신을 성찰하면서 걷고 싶다면 시계 인간에게 태엽이 필요해진 까닭이다. 그 태엽이 느림과 여유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현대 사회에서 느림을 중시하는 경향은 슬로푸드를 중심으로 한 슬로시티 운동으로까지 펼쳐진다. 이런 달팽이 운동이 복고주의가 아님은 물론이다. 양 날개로 나는 새처럼 전통과 현대, 느림과 빠름이 조화를 이뤄 비상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뜻이다.

유승훈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