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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영 비스뉴스 특파원<본사 독점수기>|이요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오늘부터 중앙일보에 독점 연재되는 이 수기는 사선을 뚫고 기적적으로 돌아와 프놈펜에서 쉬고 있는 영국계 비스뉴스 사의 이요섭 특파원(37)이 엮어 방콕에서 급거 프놈펜으로 달려간 아주경기취재반장 이방훈 특파원을 통해 보내온 것이다(편집자 주)
월남전선의 특파원들이 흔이 꿈꾸어보는 바로 그같은 꿈이라지만 내 육신은 지금 지칠대로 지쳐있다. 나를 감시하던 정규군(월맹)의 그 독사같은 눈동자가 넌덜머리가 난다. 악몽의 2주기가 나에겐 2년, 아니 20년의 지리한 세월같이 저주스럽다.
죽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한번쯤 그 굴(베트콩) 속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었으면-신문기자라면 그런 몽상을 아니해본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호사스런 망상이었다. 이미 18명의 측파원이 캄보디아 전선에서 적에 끌려가 그중 7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인 다음엔 한국인>
더구나 한국의 국적을 갖고선 어림도 없다. 공산군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미국인이요, 그 다음이 한국인,세번째가 정부군이다. 한국인으로 잡히기만 하면 시체도 못 찾고 갈기갈기 찢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몽상과도 같은 모험을 막 끝내고 프놈펜·호텔에서 쉬고 있다. 월남 전선에 세 번째 지파되어 화랑무공훈장까지 받는 등 사선을 뚫은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어서 동료들은 『이 사람, 자네는 불사조인가』, 『요섭이는 총알도 피해간다』라는 인사말을 들어봤지만 이번에야말로 나는 사경 속의 사경을 헤맸다.

<신기루 같던 정부군 포연>
동료들이 나를 「크메르·정글」속의 불사조라고 불러줄까? 그러나 나는 불사조도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탈출하던 7일 상오 1시간40분 동안의 필사의 포복을 마쳤을 때 나의 기진한 눈망울에 비친 정부군의 포연은 막막한 사막에 나타난 신기루와 같이 내게 힘을 주었다. 캄보디아 정부군 54대대의 진지가 희미하게 나타나지 않는가. 정부군의 보호를 받으며 안도의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나의 등응ㄹ 툭툭 치는 사람이 있었다. 『고생 많았지』-. 이택근 대리대사가 「헬리콥터」편으로 전선 깊숙이 들어와 나를 반겼다.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나는 이 대사를 끌어안았다.
하오 3시 조금지나 「프놈펜」 한국대사관에의 푹신한 소파에 몸을 뉘었을 때 야릇한 「노스텔지어」가 와락 밀렸다. 『이번 「크리스머스」도 함께 지낼 수 없단 말이에요?』
서울의 기자촌 단간방에서 가난에 지쳐있을 사랑스런 아내의 항읫조의 편지를 나는 받았었다. 그리고 큰놈 형국(마포 중1년), 10살박이 형애(불광국민학교3년)의 얼굴-그러나 그보다 내 머리를 치는 아프디 아픈 회의 속에 나는 말려들고 있엇다. 얄궂은 징크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도 37세에 납북>
홀 어머님의 얼굴과 아내의 얼굴이 흥건한 내 눈의 이슬 속에 겹쳐 떠오르지 않는가. 25년 전 6·25나던 해 7월 아버지(이정수씨)가 놈들(공산군)에게 납치되어 가셨다. 북괴에 끌려가던 당시의 아버지 나이가 37세, 지금의 내 나이와 공교롭게도 같다. 아버지가 끌려가실 때 내 동생이 14살이었는데 내 아들도 14살. 이처럼 얄궂은 운수소관 때문에 어머니께서는 단 2주 동안이라지만 넋을 잃고 계셨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기만 하다. 그동안 나의 안위를 걱정해준 수많은 편지와 전보가 내 손에 들어왔다.
내가 몸담고 있는 비스뉴스 사의 홍콩 지국장 존·톨로씨가 서울에 있는 우리 가족들에게 보낸 전보의 사본도 눈에 띄었다.

<시아누크 협조 요청도>
전보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기자가 공산군에게 끌려가는 것을 목격한 뒤로는 아무 소식도 입수 못했음을 용서하십시오. 이택근 대사가 정부군에게 헬리콥터로 이 기장의 납치 현장을 계속 순찰하도록 요청했답니다. 비스뉴스의 동남아 특파원인 닐·데이비드씨가 현지로 가서 정확한 납치 경위를 조사중입니다. 「런던」의 본사에서는 북평에 망명중인 「시아누크」공에게 이 기자를 풀어주도록 도와달라는 전보를 쳤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반정부군 지휘관을 잘 아는 친공계 기자 「월프레드·버체트」(호주출신)에게도 힘써달라고 부탁했고요. 또 「캐나다」의 특파원 한 사람이 다음 차에 하노이로 들어간다는 소문을 듣고 그 편에로 당부해 두었읍니다. 가족들의 인내를 바랍니다.』하지만 돌아와서 대사관 직원과 동료들에게서 들으니 『이 기자는「베트콩」에게 넘겨져 칼로 난도질을 당한 채 살해됐다.』는 정보가 굳어져 이미 외무부에 보고됐고, 서울의 각사 데스크에도 나의 처참한 죽음을 알리는 기사가 갔을 거라고 했다.
「홍콩」지국장 툴로 씨도 유가족(?) 대책을 위해 서울로 날아갔다는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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