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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속의 시동 군국 일본-삼도 할복으로 나타난 현대일본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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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그것은 바로 현대의 발광이었다. 수년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일본의 대표적 작가인 삼도유기부(45·본명 히라오까·기미따께=평강공위)가 그의 사병조직인 다에노까이(순지회)멤버 4명을 거느리고 자위대에 난입, 일본도를 휘둘러 자위대 동부방면총감을 감금하고 자위대원 9명에게 부상을 입힌 다음 25일 백주에 대원의 가이샤꾸(개착=할복 후의 옆 사람이 칼로 목 잘라 고통을 덜어 주는 것)를 받아 할복자살한 것이다.

<"자위대만이 무사">
자결하기 직전 그가 목메어 절규한 격문에 의하면 포화적 번영을 누리는 현대의 일본에서 자위대만이 참다운 일본인 사무라이(무사)의 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자위대 법이론상 위헌이기 때문에 국군으로 만들기 위해 목숨을 던진 것이다.
삼도문학으로 불리는 수많은 명작을 남긴 그는 일본에서는 가와바다(산단강성)와 맞먹는 저명한 작가. 숱한 기이한 행동과 자기 현시욕이 강렬한 개성적이 작가였다.
때문에 발광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사건은 일본 국내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25일 석간, 26일 조간 모두가 대대적으로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각 신문들은 사설까지 게재하여 그의 행동을 『용납될 수 없는 것』으로 규탄했다.
수년전부터 그는 2·26청년장교 궐기사건(1936년에 일어난 쿠데타 부대)에 비상한 관심을 쏟아 동사건을 테마로한 소설과 희곡을 썼다.

<좌익과 대결공언>
재작년엔 뜻을 같이하는 학생을 모아 다데노까이란 사병조직을 만들어 『혁명이 일어나면 사병을 거느리고 시민의 선두에 서서 좌익과 대결한다』고 공언했다.
또 혁명철학으로서의 양명학과 같은 논문을 발표, 우익행동주의의 사상과 행동의 순수성을 이론 지었다.
그의 자결은 계획적인 것이었다. 그는 25일 상오10시 유고인 『풍요의 바다』 4부작 중 제4부 천인오쇠의 원고 1백40장을 신조사에 전하는 여유를 보였다.
그의 문학은 그 말대로 나의 육체와 정신을 동가하는 것이었다
그의 대표작 애국이나 영령의 소리 등에서 엿보이듯 그는 이 신념을 관철한 다음에야 그 사와 미의 매듭이 있고 그 죽음은 가냘픈 쇠약 끝의 죽음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힘을 받쳐든 육체의 사망이 아니면 안 되었다.
삼도는 때문에 보디·빌딩(신체 강장법)에 열중하고 검도(5단)에 심혼을 기울이고 자위대에 입대하여 육체를 단련했다.
그에게 근래이 문학은 허구였다. 삼도는 글을 쓰는데 만족치 않고 붓과 칼을 같이 들었다.
그가 찬양하는 2·26이나 5·15때는 사상자와 행동자가 따로 있었다.
그러나 삼도는 이 양자를 같이하여 정신궤양 또는 두뇌궤양과 같은 삼도 미학의 완성을 꾀한 것이다.
삼도 사건이 전해지자 전세계서는 일본의 성격, 일본 속의 군국주의의 잠재적인 소용돌이를 경계하는 눈초리가 대단하다. 일부 일본 국내 우익단체들이 이 자국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자는 격문을 내걸고 가두에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일본의 위정자들이 염려하던 극우익이 서서히 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질서 짓밟는 복고>
삼도는 그의 자각영화 애국, 그리고 그가 자청 출연한 영화 히도끼리(인참)에서도 하라끼리(절복)를 미화했다. 하라끼리는 인간 최고의 아름다움이라면서 무사도에 순한 것이다.
일본의 명문 동대법과를 나왔고 고문행정과를 패스한 그는 가장 좋아하는 법률이 형사소송법이라 했다.
형송법은 법률 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형송법의 아름다움을 더럽히지 않고 자판의 길을 지켰다
그러나 양식의 상징과 같은 대표적인 문학자가 사회의 질서를 짓밟고 복고로 돌아간 참혹한 행동으로 종말을 고했다는데 현대일본의 숨길 수 없는 고민이 있다. 【동경=조동오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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