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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사의 죽음과 근로여성 보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최근에 신문에 보도된 만삭의 여교사의 죽음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동시에 직업여성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물론 이 기사에서 단순히 만삭의 몸으로 일했다는 사실이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일 수는 없고 어떤 심각한 임신중독 증세가 갑자기 발발함으로해서 일어난 결과라는 것을 짐작함수 있었다. 그러나 학교당국이 좀더 세심한 배려로 무리한 과외의 근무를 면제해 주었던들, 여교사 자신이 자기의 건강에 좀더 주의하였던들, 근로기준법에 의거한 산전산후의 휴가조치가 제대로 취하여졌던들, 젊은 여교사와 그의 태아의 생명은 그렇게 쉽사리 잃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한사람의 사건은 전체 근로여성의 복지문제에 대하여 우리에게 다시금 깊은 관심과 반성을 촉구하여 준다. 곧 교육까지 받은 교육자가 이와같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을 때, 혹은 당사자 자신이 그러한 법규 시행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을 때, 하물며 근로여성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저임금의 단순노동자들이나 소녀근로자들이 우리나라 헌법 제23조 제4항의 보호법규의 혜택을 과연 받고있는가는 하나의 큰 문제이다.
이 보호법규에는 남녀근로자에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는 것을 비롯해서 생리 및 산전산후 휴가, 아동복리시설 등 이상적인 조항들이 명시되어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들의 강력시행의 시도는 근로여성의 입장을 드리어 불리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당국이나, 당사자 자신들이 이것을 적극 주장하지 못하는 애로점이 있다.
즉 부녀자들에게 여러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붙임으로써 사용자들로 하여금 이들의 채용을 꺼리게 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업주들이 더욱 횡포를 하는 구실이 된 것은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요즘은 여성만을 위한 보호법규로부터 남성을 포함한 전체 근로자의 근로기준법 개선이 강조되고 있는 형편이다.
바로 며칠 전에 처우개선을 외치던 청년이「기준법」을 껴안은 채 자기 몸을 태워 자살했다는 보도는 너무도 처참한 것이었다.
이 청년의 죽음과 여교사의 죽음은 그 원인은 다르지만 근로기준법이 옳게 시행되지 않는데에 기인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기존법 개선을 위해서는 노조의 활약과 노동행정의 강좌 및 법적 투쟁 등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근로자의 귄익옹호에 대하여 행정당국이나 사업주·근로자들 자신들 모두가 소극적이었다고 본다.
지금까지의 직업여성들의 실정은 부녀근로자들을 위한 보호법규는 외면당한 채 오히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성의 취업이 하나의 중요한 사회적·국가적 요청으로 인정된다면, 사회는 근로여성복지 문제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대책을 가져야 할 것이다. 탁아소 설치와 가정부「서비스」, 가정생활의 간소화는 하나의 사회제도로서 보장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들 스스로가 안일한 생각과 열등의식을 씻고 동일한 일에 대한 동일한 임금을 주장할 수 있을만한 실력을 배양하는 동시에 하나의 직업인으로서의 확고한 자세를 확립하는 일이다.
위의 두 사람의 억울한 죽음이 헛된 것이 되지 않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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