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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화의 실증 북괴 5차 당 대회-거듭된 연기의 배경과 드러난 야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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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괴는 지난 2일부터 13일까지 노동당 제5차 당 대회를 가졌다. 북괴의 당 대회라는 것은 노동당의 최고기관이라는 명색을 가지고 있다. 당의 『사업총화보고』 및 승인, 당강령·규약의 채택 또는 수정, 당 정책과 전술의 기본문제 결정, 당 중앙위원 등을 선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판에 박은 각본아래 거수기를 동원하여 김일성의 우상화 또는 그의 개인독재를 강화하는 수단이 되어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북괴의 당 대회는 그들이 대내적인 문제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남 전략전술에 관한 기본책략을 결정한다는데서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고 또한 그에 철저히 대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원래는 4년만에 열어야>
이번 북괴의 당 대회는 대체로 과거와 마찬가지로 김일성의 『사업총화보고』(11월2일)→김일(제1부수상)의 이른바 『인민경제발전 6개년 계획보고』(11월9일)→중앙위원 선출(11월13)등의 순서로 이루어졌다. 이번 당 대회와 더불어 우리가 특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한마디로 이번 당대회의 특징적인 성격이다. 이번 북괴 당 대회는 l966년10월 이른바 『당 대표자 회의』가 열린 일이 있으나 1961년9월의 제4차 당 대회이래 9년만에 열린 것이었다.
여기서 우선 규정되어야 할 것은 왜 당 대회가 9년만에 열렸는가 하는 것이다. 북괴 노동당 규약에 의하면 당 정기대회는 4년에 1회, 그밖에 임시대회(한번도 열린 일이 없음) 그리고 당 대회와 당 대회 사이에 필요에 따라 당 대표자 회의를 소집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북괴는 당 규약에 명시된 정기대회를 거의 무시했으며 이는 북괴 노동당이 김일성 일본의 독선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그야말로 김일성의 사당화 되었음을 실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l946년8월 북괴는 제1차 당 대회를 가진 이래 1948년3월의 제2차 당 대회→1956년4월의 제3차 당 대회→1961년9월의 제4차 당 대회 등 때로는 8년, 5년, 2년 등의 간격을 두고있다.

<당 내외의 이상 잇달아>
이번 당 대회는 9년이라는 간격을 두고 열렸는데 그 이유로서는 대체로 ①4차 당 대회에서 내놓은 7개년 경제계획이 실패하여 3년간 연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②중공·소 분쟁으로 말미암은 중공·소의 접조 축소 ③중공·소 대립으로 북괴의 입장은 곤란해졌으며 작년 8월 북괴는 이른바 자주노선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④한일 국교정상화로 말미암은 「아시아」정세변화 ⑤대내적으로 김창만·박금철·이효순 등 당 간부의 숙청 등 당 내외의 이상 사태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항례적으로 공산당이 당 내외에서 이상사태가 계속될 때 당 대회를 개최하지 못한 예는 「스탈린」의 경우나 모택동의 경우도 마찬가지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번 당대회의 특색을 보기 위해 우선 과거의 당 대회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9년 전, 1961년9월의 제4차 당 대회는 소위 『인민경제 7개년 계획』을 비롯해서 종래의 『평화통일 공세』로부터 무력적화 통일을 위한 대남 공작강화, 반당분자의 숙청(김두봉 최창익 박창옥 오기섭 숙청)등을 발표했다. 그 직후(62년12월) 군정노선으로서 『군의 간부화, 군의 현대화, 전 인민의 무장화, 전국의 요새화』를 게양하면서 전쟁을 준비하고 대남 무장공비의 침투를 격화시켰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1966년10월에 개최된 「당 대표자 회의』에서 김일성은 ①『국제정세와 국제공산주의 운동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 ②『사회주의 건설을 촉진하며 우리의 혁명기지를 화하는데 대하여』 ③『남조선 정세와 남조선 인민의 투쟁에 대하여』라는 세 가지 의안을 제시하면서 중공·소 분쟁에서는 『자주노선』, 군사비를 증액하기 위하여 『7개년 경제계획』을 3년간 연장했는가 하면 대남 침투를 강화하여 『결정적 시기의 혁명적 대사업을 주동적으로 맞이할 것』을 호언했던 것이다.

<대남 공작에 새 전략모색>
특히 66년의 당 대표자 회담 이후 전기한 군사노선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경제·국방병진노선』을 게양하면서 전쟁을 준비하는 한편 1·21사태를 비롯해서 「푸에블로」호 납북, 울진·삼척사태, EC·121기의 격추, 그 밖의 갖은 도발과 무장공비를 남한에 침투시켰다는 것은 우리가 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 당 대회와 더불어 북괴 동향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첫째로 대남 전략전술에 관한 문제이다. 김일성은 이미 게양한 거사노선이 성공하였음을 말하고 그것을 계속 강화할 것을 말하는 동시에 『산악전과 야간전투, 대부대 작전과 소부대 작전, 정규전과 유격전』훈련을 강화하여 정규·비정규전을 계속 준비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김일성은 군의 모든 것에 앞서 『정치·사상적 우위성』을 말하여 공산주의로 철저히 무장할 것을 말하고 있다.
김일성은 남한의 혁명을 『인민민주주의 혁명』으로 규정하였는데 이것은 과거 북괴의 대남 전략에 있어서 볼 수 없었던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마도 북괴는 남한이 적화돼도 당장 공산화될 수는 없다고 체념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고 또 남한을 적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광범위한 동조자를 얻어야 한다는 것으로도 분석된다.

<월맹 등과 통일전선 구상>
또한 북괴는 종래 『정치투쟁·경제투쟁·합법·비합법·폭력·비폭력·대소규모의 온갖 투쟁』을 적극 밀고 나갈 것을 말하였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용어로써 『반합법』투쟁을 가미시키고 있는 것이다.
북괴는 『8·15구상』을 비난하였는데 그 자체 북괴는 그에 말려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고 우리는 그 문제에 「이니셔티브」를 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로 북괴는 이번 당 대회와 더불어 수정주의를 거듭 배격하면서 일본군국주의를 반대하고 그에 접근하는 세력(소련)을 비난하면서 중공·월맹·라오스의 공산세력들과 통일전선을 형성할 것을 말하고 있다.
특히 중공에 접근한 명백한 징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북괴가 계속 수정주의를 배격하고 있는 것은 이미 숙청된 반당분자들의 반격, 또는 세차게 불어오는 공산권 안에서의 자유화 바람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중공에 대해서는 정치·경제·군사적으로 그 유대가 강화되었음을 말하였는데 김일성이 『자주노선』을 게양한 이래 중공의 이름을 지적하면서 그 유대강화를 말한 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중공-소-북괴 등 북방삼각관계에 있어서 북괴의 대 중공접근은 「아시아」내지 한국에서의 긴장을 고조시킴에 상승작용을 하게 될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세째로 북괴는 이번에 다시 6개년 경제계획을 내 놓았다. 북괴는 제3차 당 대회에서 5개년 계획을 내 놓았고, 제4차 당 대회에서 7개년 계획을 내세웠으나 이번에는 6개년 계획을 내세웠다.
당 대회 직전까지 북괴는 대체로 5개년 계획을 내세울 것으로 보여졌으나 북괴가 6개년 계획을 내 세운 것은 지난 10월17일 중공과 체결된 경제과학기술협정이 71년까지 6개년에 걸쳐 북괴를 지원할 것을 명백히 했기 때문일 것이다. (북괴는 소련과도 9월17일 71년부터 75년에 이르는 5개년 경제과학기술협정을 체결했다.)
북괴는 이 6개년 계획에서 공업생산을 연평균 14% 증대시킬 것을 목표하고 있으며 북괴의 공업화와 기술혁명을 전진시킬 것을 말하고 있다. 또 북괴는 강계→혜산→무산 사이에 전략적인 새 철도를 건설할 것을 말하고 있다. 지난 7개년 계획에 있어 북괴가 시초 설정했던 목표대로 달성한 것은 전력(1백65억KHW), 석탄(2천7백50만t)등이라고 하며 그밖에는 모두 미달이었다.
북괴의 6개년 계획 또는 공업화 계획과 함께 주목을 끄는 것은 김일성이 군비위주로 북괴경제체제를 계속 이끌어갈 것을 선언했다는 점이다. 김일성은 『공업발전 수준에 따라 군사장비를 현대화하여 나가는 원칙을 견지할 것』을 말했는가 하면 경제건설을 희생하더라도 군사비를 계속 증강시킬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김일성은 이미 북괴가 여러 가지 『현대적 무기와 전투기술기재』들을 만들 수 있게 되었음을 말했으며 사실상 북괴는 그를 위해 해마다 군사비를 증액시키고 있다.
북괴는 과거 연간 39억「달러」를 군사비로 투입했고, 현재 북괴는 국민총생산고 약30억「달러」의 24%에 해당하는 7억「달러」이상을 군사비에 지출하고 있다.

<김일성 후계자에 부심>
끝으로 북괴의 이번 당 대회와 더불어 또 한 가지 주목을 끄는 것은 당 간부의 서열로서 김일성의 실제 김영주(당비서 겸 서기국 조직담당)가 김일성 최용건 김일 박성철 최현 다음으로 6위의 순서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66년 당 대표자 회의 때의 김영주의 서열은 12번이었으며 이번에 그가 6위로 승진되었다는 것은 상위 5명에 든 자가 모두 60대의 노령층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김영주를 장차 김일성의 후계자로 등장시키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제 김일성은 60을 넘어 앞으로 그의 건강 또한 심상치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 김영주의 포석은 그러한 의미에서 주목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북괴의 당 대회를 둘러싼 동향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에 대한 대비 또한 철저히 강구해 두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양흥모<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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