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취재일기

평양에 게양된 태극기를 외신으로 봐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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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영종
정치국제부문 기자

지난 14일 평양 보통강변에 자리한 유경정주영체육관. 평양은 버드나무가 많다고 해서 예전엔 유경(柳京)이라 불렀다. 여기에 체육관 건립을 지원한 현대그룹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이름을 붙여서 유경정주영체육관이다. 이곳에 태극기가 게양됐다. 2013 아시안컵 및 아시아 클럽역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한국 선수가 나란히 금·은메달을 땄다. 시상식에 두 개의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장면을 1만2300여 석을 메운 북한 주민이 기립해 지켜봤다. 북한 조선중앙TV에도 이 장면은 보도됐고, 애국가 연주가 7초가량 북한 시청자들에게 전해졌다.

 북한지역에 우리 태극기가 공식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진 건 분단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인 현장에 한국 취재기자는 없었다. 시상식 사진은 외신인 AP통신이 전했고, 북한 TV 화면만이 당시 상황을 가늠케 했다. 입장식 때 우리 태극기와 공식 국호 ‘대한민국’이 적힌 피켓을 북한 여성 진행요원이 들고 들어가는 장면은 대한역도협회가 촬영해 한국 언론사들에 제공했다.

 이런 상황은 16일 개성공단에서 이뤄진 우리 기업의 조업 재개 현장에서도 되풀이됐다. 123개 진출 업체 중 90개 사가 가동 중단 이후 166일 만에 시험운전을 시작했고, 북한 근로자 3만2000여 명이 출근해 활기가 돈 현장이었지만 한국 언론의 접근은 철저히 차단됐다. 같은 시간 공단 내 종합지원센터에서는 공단 정상화를 위해 남북이 만든 공동위원회 3차 회의가 열렸지만 여기에도 한국 기자들은 없었다. 통일부의 방북 취재 불허 때문이다.

 통일부는 유독 언론사의 방북에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북한이 거부감을 보이기 때문’이란 설명을 하지만 최근 북한의 적극적 대남 태도로 볼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익명을 요구한 통일부 당국자는 “언론의 취재·방북이 5·24 대북 제재 조치의 완화나 폐지 수순으로 해석될까 봐 우려하는 시각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2010년 3월 북한의 천안함 폭침 도발에 따른 대북 제재가 유효한 상황에서 취재기자들이 북한지역에 들어가는 건 문제라는 인식이다.

 정부의 대북 접근이나 남북 교류 현장이 투명하게 대한민국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전달돼야 하는 건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외신은 북한에 들어가 취재할 수 있는 걸 한국 언론은 왜 취재할 수 없나. 언론 보도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다양한 여론의 소중함을 북한에 일깨워 주기 위해서라도 언론의 폭넓은 접근이 허용돼야 한다.

이영종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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