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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월세 문제를 당장 해결한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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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심상복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

“앞으로 아동 성폭력은 일벌백계로 다스릴 것입니다.” 법무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이렇게 밝히면 관련 범죄가 일시적이나마 줄어든다. ‘어나운스먼트 이펙트(announcement effect)’다. 경제 분야에서도 이런 게 통할 때가 있다. “당분간 경기상황을 감안해 금리인상에 신중을 기하고자 합니다.” 한국은행 총재가 이렇게 말하면 주식투자자들은 호재로 해석하고 금융시장은 적절한 반응을 보인다.

 이런 경우는 어떨까. “가을 이사철 전에 전·월세 문제를 꼭 해결하라.” 가을을 코앞에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렇게 강조했다. 지난달 19일에는 경제장관들을, 다음 날엔 청와대 수석들을 다그쳤다.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읽힌다는 점에서는 얼마간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어나운스먼트 이펙트는 발표 내용의 실행 가능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검찰이 아동 성폭력을 엄벌하겠다고 하면 수사력이 그쪽에 맞춰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전·월세난을 빨리 해결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강한 정부라 해도 그럴 수단은 별로 없다.

 박 대통령은 구체적 방안까지 언급했다. “서민들이 적정한 임대료로 거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고, 분양주택 용지를 임대주택 용지로 돌려라.” 과거에도 숱하게 들어온 말이고, 빠른 효과와는 거리가 먼 중장기 대책이다. 물론 그냥 있는 것보단 나을 게다. 문제가 확산하고 있는데 정부가 묵묵부답일 경우 무능이란 소리를 듣기 안성맞춤이다.

 불과 1주일 뒤 정부는 대책을 내놓았다. 최근의 전·월세난이 매매 위축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거래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전세를 구하는 사람에 대한 직접 지원은 별로 없었다. 그럴 경우 전세 수요를 더욱 촉발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8·28 대책은 한마디로 전세를 찾는 사람들에게 집을 사도록 권유하는 것이다. 취득세율 1%를 6억원 이하 주택으로 확대한 것도 같은 차원이다.

 정부는 이번에 주택시장에 직접 발을 담그는 모습도 보였다. 수익공유형 모기지가 그것이다. 국민주택기금을 통해 주택구매자에게 돈을 빌려주고 집을 구매하게 지원하는 것이다. 대출한도는 2억원이고 금리는 연 1.5%다. 나중에 집을 팔아 이익이 생기면 정부와 나눈다. 대상은 3000가구(소요 예산 3000억~4000억원)로 제한했다. 전국의 세입자가 700만 가구임을 감안하면 그냥 시늉만 내는 수준이다.

 박 대통령의 ‘목돈 안 드는 전세’ 공약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가 은행들로 하여금 관련 상품을 만들도록 했지만 이것 역시 겉돌고 있다. 한 달간 이용객이 몇십 명에 불과하다. 1인당 대출이 평균 6000만원으로 정부가 약속한 금액의 5분의 1 수준이고 대출조건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정책이 모양만 갖추는 데 급급하면 정부의 신뢰는 떨어진다. 목소리만 커도 마찬가지다. 당장 할 수도 없고, 획기적인 대책이 나올 수도 없는데도 국민 기대를 부풀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심상복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