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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삶조차 살기 힘든 어두운 시대의 정서 만져질 듯 생생하게 표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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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호 06면

화가가 ‘올해의 작가상 Korea Artist Prize 2013’의 수상자가 된 것은 뜻밖의 일이다. 다른 시상에서도 대부분 회화는 경쟁 후보에 오르긴 해도 설치나 미디어 등 다른 매체들과의 경쟁 속에 구색 맞추기로 들어가 있다는 느낌이 많았다. 이번에 함께 후보에 오른 신미경·조해준·함양아 등이 모두 만만치 않은 공력을 가진 작가들이고 모두 밀도 높은 전시를 보여주는 가운데 회화 작가가 수상했다는 점에서 더 흥미롭다. 이런 경쟁적 요인 가운데서 역설적으로 “더 이상 새로운 성과를 보여주기 힘들다는 선입견에 휩싸여 있는 회화 매체에 천착, 보기 드문 혁신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가 수상자가 되었다. 화가 공성훈(48)은 수상 소감을 “그림을 그리면서 내 작업에 반응이 있기는 한가 싶었는데 이번 수상을 계기로 내 방향이 틀린 건 아니었구나 확신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국립 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공성훈

사실 공성훈은 그 경력도 뜻밖이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그는 미대를 다녀보니 도무지 ‘발이 허공에 떠있는 것’만 같아서 다시 서울산업대학교 전자공학과에 편입, 졸업한다. 그리고 다시 미대를 석사 졸업한다. 설치 작품에 몰두하던 그는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회화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차가운 디지털 기호로 존재하는 미술 대신 그는 회화의 “촉각적 관능, 땀 냄새가 나는 관능”을 선택했다. “뻔질나게 돌아다녀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집들을 그린 세잔, 배의 마스트에 몸을 묶고 폭풍우를 체험했던 터너”처럼 그에게 회화는 무엇보다 ‘몸의 부딪힘’에서 비롯되는 예술이었다.

처음 발표한 그림들 역시 지극히 공성훈다웠다. 그가 “매일 보고 만지고 돌아다니는 동네의 개들, 풍경들”이었다. 아마 낮에 보았다면 너무 진부해서 그림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정경들이, 그렇게까지 클 필요가 없다 싶은 오버사이즈로 크게 그려졌다. 그림의 대상은 별 볼 일 없는 시시한 것이지만, 그것에서 느끼는 감정이 복잡하고 무한했기 때문이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수상자의 전시 ‘겨울 여행’전 코너에 가면 큼직한 풍경화들이 끝도 없이 도열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전통적인 풍경화란 기본적으로 잃어버린 유토피아에 대한 동경을 담은 그림이다. 요즘 멋진 풍경은 여행사 광고나 여행 블로그를 도배하고 있어 풍경화를 그린다는 것이 도무지 낯 뜨거운 일이 되어버렸다. 공성훈의 그림은 기존 풍경화의 관행, 회화의 관행을 뒤집어엎으면서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촉각적인 생생함을 가지고 있지만 낯설고, 불편하고, 그로테스크하다.

담배를 피우면 안 될 바로 그 자리, 놀아서는 안 될 그 자리, 낚시를 해서는 안 될 그 자리에 인물들은 태연히 등장하고 있다. 편안한 풍경 감상을 유도해야 할 정경 인물들이 오히려 위태로움을 증폭시킨다. 웅대한 자연의 숭고미가 들어서야 할 자리에 숭고의 원래 모습인 두려움·공포가 태연히 얼굴을 내민다. “예술적인 삶은커녕 평범한 삶을 살기에도 힘든 어두운 시대의 정서”를 표현한 것이다.

‘청와대·국회의사당, 그리고 연꽃’처럼 풍경적으로 잘 연관되지 않는 것들이 한 화면에 짜깁기해 등장하면서 정치·사회적인 은유가 그림 속에 끼어든다. 어쩌면 이 모든 평범한 풍경을 그로테스크한 디스토피아의 풍경으로 만든 것은 우리의 삶 자체일지도 모른다. 좀처럼 미화하기 힘든 21세기 한국의 심리적 풍경이다. “일상의 미세한 주제에 몰두하는 여타 동시대 회화에 비해 밀도 깊은 심리적 차원을 불어넣는 공력이 인상 깊다”라는 심사평은 그래서 나왔다. 크게 공감할 만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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