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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바보 캐릭터를 넘보는 요즘 엄친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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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요즘 ‘예능 샛별’이라는 가수 존 박이 그저께 밤 TV출연을 한 모양이다. 어제 아침 인터넷은 그의 기사로 도배됐다. 냉면 매니어라는 그가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모 냉면 전문점 강남점과 분당점의 맛을 기막히게 구별했다던지, 그가 소개한 야식이 “온몸을 휘감는 맛”이라는 유재석의 평가 등이다. 지저분한 집 안 내부도 공개했는데 “역시 반전 매력”이라는 평이 줄을 이었다.

 “처음엔 엄친아였는데 요즘은 국민덜덜이로 불린다”는 박미선의 말에 “사람들이 전보다 더 친근하게 대해주기 때문에 만족한다”고 답했다는 기사도 있다. 기사인지 녹취인지 시시콜콜 내용을 옮겨 적어, TV를 보지 않고도 본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알려진 대로 존 박은 2010년 오디션 프로 ‘슈퍼스타K’ 출신이다. 재미교포로 가창력, 외모, 학벌 등을 두루 갖춰 유력한 우승후보였다. 물론 대중은 ‘슈퍼스타K’라는 오디션에서는 ‘스펙 따윈 상관없는 공정 경쟁’ ‘서민영웅의 탄생’을 보고 싶어 했고, 그 결과 우승은 중졸의 환풍기 기사 출신 허각에게 돌아갔다.

 이런 그가 돌연 ‘국민덜덜이’ ‘국민바보’가 돼서 나타났다. 최근 종영한 tvN의 페이크 다큐 ‘방송의 적’이 계기였다. 입을 크게 벌려 헤벌쭉 웃거나, 모자라 보이는 의외의 모습에 대중은 환호했다.

 사실 이른바 ‘고품격 발라더’들의 망가지기는 요즘 트렌드이기도 하다. 이적, 유희열 같은 ‘S대 출신 실력파 뮤지션’들이 예능에서 속속 망가져주고 있다. 반면 같은 엄친아 계보로 지난해 ‘슈퍼스타K’ 우승자 로이킴은 승승장구하더니 막상 앨범 발표 후 표절 시비에 휘말려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부러운 엄친아여서 열광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허점을 확인하고 싶은 대중에게, 빈틈도 시련도 없어 보이는 로이킴은 어쩐지 심히 유감이었던 모양이다. 표절 의혹이 제기되자 기다렸다는 듯 가혹한 여론재판이 일었다.

 존 박은 “(설정이 아니라) 원래 성격이 느긋하고 어리바리한 구석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쨌든, 바보라면 “띠리리 띠리리” “영구 없다~”나 맹구 등이 떠오르는 나에게 ‘엄친아 국민바보’는 좀 낯설다. 안 그래도 “장르불문 2000년대 문화의 주된 키워드”(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인 엄친아란 재능이나 외모뿐 아니라 집안·학벌 등 ‘출신배경’까지 뒷받침되는 것인데, 이제는 거기에 친근하고 만만한 바보 이미지까지 추가한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모든 것을 다 갖춘 엄친아가 국민바보까지 넘본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머지 사람들은 뭘 해야 하는 거지? 이제는 바보 캐릭터도 사랑받으려면 집안 좋고 명문대 출신에 얼굴까지 잘생겨야 한단 얘긴가 말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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