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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식민의 상처 씻고 모범농업국으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산에서 원주민의 창과 돌의 세례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전날 밤 신세를 진 그 젊은이를 찾았다. 그는 마침 일터에 나가고 없었으며 그의 부인도 보이지 않았다. 오래 기다릴 수 없어서 위험을 당한 이야기를 전하지도 못하고 아쉽게도 곧장 서울 [수바]시로 향했다.
봉변으로 산 속 아주 깊숙이 들어가 보지는 못했으나 [피지] 원주민은 그전에는 바닷가에 많이 살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유럽] 사람과 인도사람들의 이주로 거의 산 속으로 쫓겨 들어가서 살고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피지] 군도는 불만한 것이 많다. 주도인 [비티레부] 섬의 동쪽 해안에 있는 [바우]라는 자그만 섬은 오랫동안 영화를 누리던 [피지] 왕이 살던 곳으로 유명하며, 또 [타베우니] 섬은 [코코] 야자의 재배가 활발하여 [피지의 농원]으로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비둘기와 앵무새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수비둘기는 녹색 무늬가 계절에 따라 눈부신 [오린지] 빛깔로 바뀌는 매우 야릇한 종류라고 한다.
그러나 시일이 없으니 이런 것을 다 볼 수는 없었다.
그 많은 섬들을 다 둘러보자면 1년도 더 걸릴테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로마]의 철학자 아닌 수군학자 [세네카]의 말처럼 사람의 목숨이 너무나도 짧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인생은 짧고 자연은 길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온 지구의 모습을 한번 속속들이 보고 죽었으면 한이 없으련만 오직 유한한 인생이 한일뿐이다.
기독교의 포교는 이웃 섬나라들에 비기어 다소 늦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이 신앙이 이들의 생활 속에 뿌리 박고 있다. 한편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도 꽤 많다고 하며 [라우토카]에는 [이슬람] 사원과 또 [이슬람] 학교가 있다기에 이곳을 찾기로 했다. 이 종교는 이교가 되는 셈이지만 이들은 여전히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을 든 굳센 신앙을 지니고 있었으며 [코란]을 외는 요란한 소리가 [스피커]를 통하여 울려 퍼지고 있었다.
[피지] 군도에는 [피지] 원주민, 인도사람, [유럽] 사람, 혼혈종 또는 중국인들이 사는데 인도 사람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니 흡사 인도와도 같이 느껴진다. 여기서는 다른 아열대와는 달리 관청이나 회사에서 낮잠을 자지 않지만 오후 5시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 철시한다.
그런데 여기 사는 인도사람은 본국인 인도의 초라한 사람과는 달리 모두들 피둥피둥하고 낙천적이며 이들은 내세보다는 현실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피지] 섬의 인도인이 본국사람과는 생활양상이 많이 달라 보이는데 이것은 환경이 사람을 재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피지](FiJi)란 이름은 [폴리네시아] 사람들이 수도가 있는 [비티레부] 섬만을 부르던 이름인데 백인들이 태평양도서를 발견할 때 전체 이 섬의 이름인 줄 잘못 알고 그대로 지도에 기입하게 되어 생긴 이름이다. 많은 섬이 옹기종기 모여서 이루어진 만큼 많은 촌장이 나누어 가지고 다스렸었다. 19세기 전반에는 대촌장 [타콤바우]가 여러 섬을 통일하여 다스려 오다가 중엽에는 또 원시 봉건제이긴 했으나 왕국을 이루었었다.
그 뒤 태평양의 분할로 둘러싼 영국·독일·미국 사이에 분쟁이 벌어진 끝에 영국이 지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들이 백인과의 접촉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이 [피지]의 근대사가 되는 셈이다.
그러니까 이 섬들의 원주민은 그 전 까지는 목경방법에 의한 화전농업을 하며 원시적인 농사를 지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백인들이 들어오면서부터는 기름진 땅을 이용하여 이른바 기업적인 농원농업을 하기 시작하여 세계경제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상품작물을 재배하게된 것이다.
처음에는 면화를 가꾸었는데 이것은 미국의 남북전쟁을 전후하여 수입하지 못하는 목면을 이 [피지] 섬에서 보충하기 위한 것이었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는 면화를 [프랑스]에 비싸게 팔았으나 [프랑스] 제국이 무너지는 바람에 [피지] 면의 시장이 좁아들어 이번에는 사탕수수를 심게 외었다. 그 뒤 독일의 사탕무의 재배로 국제가격이 떨어졌었지만 꾸준히 계속하여 지금과 같은 농업국으로서의 기반을 닦은 것이다. 비록 백인의 힘으로 얻은 타율적인 농업기술이긴 하지만 독립 후는 이것이 [피지] 사람의 경제적인 독립의 힘이 될 것이다.
내가 여행했을 때는 멀지않아 독립한다고 술렁거리고들 있었는데 어떤 나라의 독립보다도 축하해야 할 이 [피지]의 독립일에 식인종의 후예들이 그 검은 입으로 독립의 기쁨을 부르짖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이곳을 떠나야하는 것은 매우 서운했다. [김찬삼 여행기(피지군도에서 제7신)]
※다음 회부터 [통가] 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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