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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과 멍텅구리와 양면의 거인 드골|설즈버거 저서에 나타난 각국 수뇌들의 콧대 품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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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드골이 콜릉베의 별장으로 옮겨 앉은지도 1년반. 그러나 그의 『위대한 콧대』에 대한 인기는 15만부의 회고록이 발매당일에 매진될 만큼 아직도 대단하다.
이 회고록에는 20세기의 거인들에 대한 그의 품평(?)이 수두룩하게 나오지만 이번에는 드골에 대한 이들의 품평집이 나올 예정이어서 화제.
뉴요크·타임스의 칼럼리스트 설즈버거씨가 저술한 『마지막 남은 거인-드골』중에서 드골 측근과 각국 수뇌들이 드골에 가한 품평을 모아보면….
『형편없는 멍텅구리와 날카로운 직관력의 범벅』.
이것은 드골 밑에서 각료를 지냈던 가스통·부르이예의 말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그는 드골이 『개명하기전의 그리스 사람 같다』고 여운 있는(?) 혹평을 했다.
2차 대전 중 드골의 비서로 일했던 미리벨 역시 비슷한 견해인데 다만 『고집불통의 일면과 위대한 사상가의 일면』이라고 체면 있게 표현했을 뿐이다.
그의 『돌 같은 무뚝뚝함』(풍피두의 말)은 각료라도 이름을 불러주는 법이 없을 정도.
한때 조르지·퐁피두 프랑스대통령을 『조르지』라는 애칭으로 부른다해서 동료들의 부러움을 산적이 있었지만 『전혀 그런 적이 없었다』는게 퐁피두의 고백. 그러나 무뚝뚝함과 독단을 가장 훌륭하게 발휘했던 것은 46년 첫 번째 은퇴 때였다. 느닷없이 수상관저로 각료들을 소집하고는 『나 그만두기로 했소이다』라는 한마디로 회의를 끝냈던 것.
그의 무뚝뚝함은 몰취미와도 통했던 듯, 『오락이라야 기껏 TV 보는 정도』였다고 브루 이예는 말한다.
『가끔 산책도하고 책도 읽지만 그때의 석상 같은 표정』은 도시 『얘기를 건넬만한 틈』도 보이지 않는다고. 과묵이 흉물 떠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은 정한이치이지만 드골의 경우에는 퍽 심했던 것 같다.
재상을 지냈던 피네가 사의를 표명했을 때 드골은 『펄쩍뛰면서』말렸지만 사실은 『이미 후임자의 발령까지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러나 드골이 『탁월한 유머감각의 소유자』라는 것은 측근들의 중평.
예컨대 런던 망명시절에 그는 비서들과 함께 곧잘 『흉내내기 놀이』를 했는데 비서로 일하던 비요트에 의하면 연합군이 승리를 거들 때마다 페탱 원수의 말투와 제스처를 흉내내어 중대성명을 발표하고는 어린애처럼 기뻐했다고. 또 한번은 비서중의 한사람이 유부녀와 정사를 벌인 것이 탄로 나자 『해임을 명령』하면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간통하다가 침대에서 들킨 놈이라면 바보에 틀림없어. 나라면 그렇게 하지는 않아.』
이러한 유머감각과 내숭스러움은 2차 대전 중 스탈린과의 술수다툼에서 십분 발휘되었다. 『졸병 없는 장군』으로 런던에서 소일하던 시절 드골은 스탈린에게 중대 제안을 했다.
다름이 아니라 『라인강 이동을 프랑스에 주면 동구를 전부소련이 가져도 가만있겠다』는 것. 부관들이 『미 영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만류하자 드골은 조용히 대답했다. 『이런 제안은 스탈린이 응하지 않아. 그러나 이렇게 해 두지 않으면 스탈린은 동구를 그냥 먹으려 한단 말이야』 그래서인지 스탈린은 죽을 때까지 그를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코 큰 사내』라고 불렀다.
미 불 관계가 더욱 미묘해져 있었던 62년 케네디 대통령은 3시간 반에 걸친 양자회담이 끝나자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문젯거리가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지. 하여간 그는 위대해.』
맥밀란이 구공시 가입문제 때문에 드골 문전을 배회했을 때 그는 드골을 『콧대센 구식의 민족주의자』라고 까 내렸다. 이에 비해 아데나워 수상의 드골관은 그의 영고성쇠와 더불어 수시로 변했던 듯. 46년 1차 은퇴 때에 아데나위는 『처칠에 비하면 족탈불급』이라고 혹평했으나 제5공화국 대통령으로 롤백하자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정치인』으로 탈바꿈했다.
나세르는 드골의 가장 열렬한 예독자의 하나.
『원칙에서 사는 사나이』 『불굴의 프랑스 수호신』등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적인 에슈콜·벤구리온 등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의 드골을 혹평한 거인들도 많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고집과 술수의 쌍벽』인 처칠 수상. 런던 망명시절에 그의 비서 기샤르가 그 이유를 묻자 드골은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나는 프랑스의 장래이고 그는 영국의 수상이거든』 <홍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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