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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생령의 떼죽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수학여행길의 버스가 중학생을 77명이나 태우고 건널목에서 일단정지 규칙을 무시하고 그대로 달리다 열차와 충돌, 중학생 45명과운전사1명이 즉시에 소사하고, 32명의 중상자를 낸 사상최악의 버스 참사를 빚었다.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가장 즐거운 수학여행에 떠난 꽃봉오리들이 채 피어나지도 못하고 생 화장된 것은 애처롭고 비통스럽기 짝이 없으며, 그들의 영혼이나마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찌 그 유족들 뿐이겠는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정의 보배를 잃은 유족들에게 우리는 심심한 조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많은 어린것들을 비명에 가게 한 사회의 책임을 성인사회는 함께 뼈아프게 느껴야할 것이며, 이 사고를 내게 한 궁극적인 책임자들은 마땅히 그 법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이 시점에서 국민이 공통으로 느끼고있는 심정이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지적할 수 있는 제1차적 책임은 함께 횡사를 당한 사고 버스의 운전사와 이번 수학여행을 인솔하고 갔던 교사들에게 있다고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귀중한 어린 생명을 수십 명씩이나 태운 버스 원전사가 건널목 길에서 일단정지 규칙을 무시하고 차를 돌진시진 잘못은 그가 비록 이미 고인이 됐다하더라도 결코 눈감아줄 수 없는 치명적인 과오였음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또, 모처럼 떠난 ,수학여행길에서 어린 제자들의 행동이 자칫 위험을 몰고 올 가능성이 있음을 충분히 예견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10여명의 인솔교사들이 그들끼리만 몰려 긴 「버스」 대열의 선두를 달리던 사고차량에는 1명도 안타고 있었다는 사실은 교사로서는 변명할 수 없는 직무유기였음을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잇달아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버스 사고들의 연발은 이사회의 어딘가에 나사가 빠져 거대한 국가생활의 「메커니즘」이 송두리째 잘못돼 가고 있다는 적신호를 울리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는. 위정 당국자와 모든 지도층인사들의 책임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줄 안다.
사고현장주변을 살펴보면, 현충사와 온천장 등이 있는 관광지주변의 건널목에 입체교차로는 만들지 못하더라도 차단기나 간수조차 배치하지 않았던 당국의무책임을 무엇이라 변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이번 사고현장은 평소부터 『마의 건널목』으로 불릴 만큼 사고가 잦았던 곳이라는 점에서도 당국의태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라 하겠다.
특히 현충사의 성역화와 문교당국자에 의한 동 지구의 수학여행 「코스」지정에 따라 이 건널목을 통과하는 교통량이 날로 급증하고 있었을 것임을 상기할 때 당국은 왜 이러한 위험건널목에 입체교차로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던지 의심스럽다.
한편, 57세의 고령 병약 운전사를 채용한 관광업소 연흥산업의 책임도 회피할 길이었을 것이다. 서씨는 평소 심장병을 앓아왔다고 하며, 종전직장에서도 정년 퇴직한 사람이라 하는데 이러한 고령 병약한 운전사를 채용한 관광회사는 손님의 생명을 너무나 경시했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노령의 운전사들에 대한 ,사회보장이 되지 않아 연로하고 병약한 운전사까지 취업해야 하는 사회환경도 개탄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일반적으로 수학여행을 실시하는 학교당국의 무계획성과 무질서에 대해서도 이번 기회에 따끔한 경종이 울려져야 할 것이다. 경서중학의 3년생은 4백여 명이었는데 이들이 7대의 전세 「버스」에 분승했었는 데도 불구하고 사고 버스에는 정원을 훨씬 넘는 77명이란 학생이 타게 했고, 이들이 차 중에서 소란을 피워 운전사의 정신을 혼란케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게 한 것도 사고의 한 이유라고 하겠다. 인솔교사들이 좀더 질서 있게 탑승지휘를 한 후 인솔교사가 함께 타고 있었더라면 이러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아닌 가도 생각된다. 또 귀가시간을 너무 늦게 잡아 과속으로 달리게 한데도 무리가 따랐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고 책임자들의 책임을 물어봤자 죽은 어린이의 생명이 되돌아올 것은 아니기만, 우리는 위로는 대각에 있는 사람에서부터 아래로는 직접적인 책임의 일단이 있는 인솔교사들에게 까지 응분의 문책을 가하는 것만이 이 싯점에서 격앙된 민심을 수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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