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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공포 공동체' 가 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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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
논설위원

‘산낙지는 중국산’. 서울 중구의 한 낙지집에 이런 글귀가 등장했다. 좀 전까지 ‘국내산 세발낙지’가 이 집의 세일즈 포인트였다. 일본 방사능 여파로 국내 산낙지가 오염됐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어쩔 수 없이 영업 방침을 바꾸었다. 후쿠시마 앞바다에 버려진 오염수가 서·남해안 갯벌까지 흘러들었다는 것이 뜬소문의 버팀목이다. 그곳의 바닷물이 해류를 타고 우리 해안에 도달하려면 수년이 걸리고, 국내 수산물에서 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예기치 않는 공포가 식탁을 지배한다.

 어떤 면에서 공포는 생존의 방패다. 맹수와 마주쳤을 때 느끼는 두려움은 도망가라는 신호다. 무서울 만큼 무서우면 공포는 더 이상 적이 아니다. 하지만 과잉 공포는 다르다. 집단·국가 간 갈등을 일으키는 불씨이자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스트레스가 된다. 사회의 누군가는 과잉 공포의 돌에 맞아 치명상을 입기도 한다.

 최근의 수산물 공포는 분명히 부풀려져 있다. 시중의 참치는 남태평양에서 잡아오고 수입 명태 역시 일본산이 거의 없는데도 횟집·생선가게의 매상은 뚝 떨어졌다. 국내 수산물까지 모조리 공포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총리·장관이 수산시장을 찾아가고 관가에 ‘횟집 회식’ 지시가 떨어졌지만 입맛은 돌아오지 않는다. 정부·전문가의 공식적인 발언보다 안개 같은 소문을 서로 믿고 주고받는, 강력한 공포의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다. 그 그물에 걸려 60만 수산 종사자는 말을 잃고 어린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떤다.

 이번 공포는 지난 7월 일본이 오염수 방출 사실을 숨겼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작됐다. 인터넷에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넘쳐날 때 정부는 허둥지둥했다. 공포의 네트워크는 정부의 잘못을 따지고 검역의 허술함을 꼬집는다. 그렇지만 공포의 근원과 폐해를 정부·제도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먹거리 공포는 낯설지 않은 현상이다. 미국쇠고기·오리고기·닭고기·분유 파동만 보자. 잊을 만하면 괴물급 공포가 고개를 쳐들어 큰 상처를 내고 지나갔다. 왜 우리는 먹거리 공포에 취약할까. 가상의 식탁에 정신의학자·사회학자·커뮤니케이션학자 3인을 초대했다.

 “한국인은 너무 열심히 산다. 그만큼 뇌가 지쳐 있다. 뇌가 피곤할 때 불안을 더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담담하게 반응해도 되는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과잉반응은 이성을 무디게 한다. 방사능 수산물보다 폭탄주·담배가 더 해롭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교수)

 “한국인은 현세주의(現世主義)적이다. 유교사회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죽으면 끝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유난히 많다. 당연히 건강 염려도 크다. 먹거리에 민감한 문화도 만들어졌다. 여기에 장기불황·실업·입시경쟁 등 사회불안이 더해져 과잉 공포를 만들어낸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정보통신·미디어의 발달이 영향을 주고 있다. SNS는 정보 쏠림의 도구다. 이를 통해 불분명한 정보와 유언비어가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통제도 불가능하다. 정부와 매스미디어가 넋 놓고 있는 사이, 사람들은 공포의 메시지에 감염된다. 반박의 메시지는 뒤늦게 만들어진다.” (안민호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3인의 시각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과잉 공포가 현대의 불안심리와 한국적 가치관이 들러붙어 있는 공동체적 문제라는 진단이다. 정부·검역 부실이 공포의 도화선이라면 우리 내부에 웅크린 불안·과속·현세는 공포의 화약, 그 자체다. 조만간 수산물 공포는 사라지겠지만 머지않아 다른 품목의 가면을 쓴 공포가 다시 출몰할 것이다. 시민사회와 언론은 공포를 조절하는 근육을 키워야 한다. 개인도 진실과 오해를 가려내는 눈을 가져야 한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나무가 많아야 숲은 조용하다.

이규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