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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세금감면 연 2조 … 서류 두 장이면 끝, 검증도 부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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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연말정산 때 봉급생활자들은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 주민등록등본, 보육료와 기부금 등의 각종 영수증 등 수십 쪽에 달하는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13월의 월급’이라 불리는 소득공제를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다. 기업에도 비슷한 게 있다. 연구개발(R&D) 세제 지원이 대표적이다. 기업의 연구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기업 규모에 따라 3~25%까지 연구개발 비용의 일부를 세액공제 해준다. 국가가 세금을 감면해주는 여러 제도 가운데 액수가 가장 많다. 연구개발 조세 감면 규모는 2007년 1조6024억원에서 2011년 2조5516억원으로 급증세다.

 그런데 국세청이 1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법인 R&D 세제 지원 현황’에 따르면 기업이 세제 지원을 받기 위해선 고작 두 페이지짜리 ‘일반연구 및 인력개발비 명세서’만 제출하면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개인 연말정산보다 절차가 훨씬 더 간단한 셈이다.

 세액공제가 적절했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허술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세액공제를 받은 기업은 통상 5년에 한 번씩 진행되는 정기 세무조사에서 세액공제가 적절했는지 사후 검증을 받는다. 그러나 국회 재정위 관계자는 “고도의 전문 지식이 필요한 R&D 분야의 특성상 세무공무원이 적정성 여부를 면밀히 따져보는 것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 감사원이 1월 발표한 ‘기업 연구개발 투자 조세감면 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연구개발 관련 인력이 아닌데도 이를 속여 80억원의 세액공제를 신청하거나, MBA 과정을 이수 중인 직원의 교육비를 연구개발 세액공제 신청액에 포함하는 등 5건의 부정 사례를 적발했다. 경기도의 한 기업은 2011년 절삭 선반 등 양산용 설비를 19억원어치 구매한 뒤 이를 연구인력 개발비로 둔갑시켜 세액공제 혜택을 받았다가 들통나기도 했다. 당시 감사원은 감사 인력 부족 때문에 서류 감사만 벌였는데 현장 감사까지 실시했다면 훨씬 많은 부정 사례가 나왔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회 재정위의 새누리당 이재영(비례대표) 의원은 “정확하고 정직하게 기록하는 회사들마저 덩달아 불이익을 받도록 하는 부당행위를 근절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R&D 지원 자금이 대기업에 집중된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새누리당 박대출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미래부의 전체 연구개발 예산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40%를 웃돌았다. 지난해 기준으로 삼성이 1177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LIG(1031억원), 현대(1002억원), 한화(715억원), 한국수력원자력(662억원), LG(633억원) 등의 순이었다. 특히 최근 인터넷 생태계 파괴 논란을 빚고 있는 NHN에도 ‘대기업 연계 창의 프로젝트 및 인턴십 지원’이란 과제에 지난 2년간 17억5000만원을 지원했다. 다음(DAUM)도 ‘맞춤형 콘텐트 서비스를 위한 실시간 감성분석 및 공유 기술’이란 과제에 지난해 3억3700만원을 지원받았다. 박 의원은 “미래부는 투자여력이 충분한 대기업에 국가 R&D 예산이 지원되는 것은 최소화하고, 능력 있는 중소기업에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며 “예결위 활동 과정에서 중소기업 지원 비중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권호·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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