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재 "정성룡, 큰 경험 많아 안정적 … 김승규, 동물같은 순발력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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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정성룡(위)과 김승규가 치열한 대표팀 수문장 주전 경쟁을 펼치고 있다. 두 선수가 8일 파주 NFC에서 슈팅을 막는 훈련을 하고 있다. [뉴시스]

축구에서 골키퍼는 부상이나 큰 실수가 없다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골키퍼를 ‘철밥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 정성룡(28·수원)이 2010년 남아공 월드컵부터 3년 가까이 붙박이 수문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정성룡 천하’가 깨졌다. K리그 클래식에서 연일 미친 선방을 보인 김승규(23·울산)가 급부상했다. 김승규는 올 시즌 경기당 0.91실점으로 정성룡(1.16실점)을 앞서고 있다. 김승규는 지난달 페루전(0-0무)과 지난 6일 아이티전(4-1승)에서 정성룡을 밀어내고 대표팀 골문을 지켰고, 수차례 수퍼세이브를 했다. 정성룡은 10일 크로아티아전 전반에는 좋았지만 후반 2실점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김병지(43·전남)를 밀어낸 이운재(40), 그리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직전 이운재를 밀어낸 정성룡이 오버랩된다. 3년 만에 골키퍼 전쟁이 다시 시작됐다. 정성룡과 김승규 중 누가 나을까. 한국 골키퍼 중 유일하게 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했고, 월드컵에 네 차례나 참가한 ‘전설의 수문장’ 이운재를 수원에서 만났다.

 지난해 은퇴 후 지도자 준비를 하고 있는 이운재는 지난달 20일 유소년 클리닉에서 정성룡을 만났다. 이운재는 “성룡이에게 어느 분야에서나 1인자 자리를 지키는 건 쉽지 않다. 마라톤에서도 선두가 가장 외롭다. 천하의 이케르 카시야스(32·레알 마드리드)도 벤치를 지키고 있지 않나.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이운재는 정성룡에 대해 “월드컵과 올림픽 등 큰 대회를 경험한 게 큰 자산이다. 나도 한·일 월드컵 경험 덕분에 독일 월드컵을 차분하게 치렀다”며 “또 성룡이는 안정적이다. 골키퍼에겐 화려한 수퍼세이브 1개보다 평범한 슈팅 9개를 막는 게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승규에 대해서 이운재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봤다. 아주 큰 선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팔이 길고 신체조건도 좋다. 2008,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페널티킥을 세 차례나 막는 걸 보면 동물적인 순발력을 지닌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운재는 “골키퍼를 평가하기 위해선 최소 3~4경기가 필요하다. 코칭스태프에게 꾸준히 어필해 계속 기회를 얻어야 한다”며 “나도 한·일 월드컵 때 거스 히딩크 감독님의 지시로 2주 만에 7㎏을 뺀 적이 있다. 그 뒤로 인정을 받고 중용해 주셨다”고 조언해줬다.

 이운재는 정성룡의 손도, 김승규의 손도 들어주지 않았다. 아직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9개월이 남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성룡은 좌절하지 말고, 김승규는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또 이건 둘만의 경쟁이 아니다. 김진현(26·세레소 오사카)과 김영광(30·울산), 신화용(30·포항) 등도 포기하지 말고 도전해라. 난 폐결핵 3기를 이겨내고 정상에 올랐다. 후배들이 나도 넘어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수원=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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