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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불행 동전의 양면 같아 실체 없으니 집착 부질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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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시우 교수

승려가 되기 위해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직에서 5년이나 일찍 은퇴한 이시우(75) 명예교수. 이후 불교철학에 천문학을 접목한 특유의 저술을 선보여 온 그가 새 책을 냈다. 『직지, 길을 가리키다』(민족사)이다.

 새 책의 ‘직지(直指)’는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말한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으로 유명하지만 실은 고려 말기 백운 화상(1299∼1375)이 펴낸 선불교 서적이다. 혜능·마조·조주 등 중국 불교사를 장식한 선사 110명의 선문답·게송(揭頌)은 물론 석가모니와 그 이전의 여섯 부처를 합친 칠불(七佛)의 가르침, 가섭부터 시작하는 인도 28조사(祖師)의 게송 등을 담았다.

 10일 만난 이 교수는 “ 선불교에서 선문답의 해석은 금기시돼 있지만 그런 신비화는 비합리적인 것을 권위로 치장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측면에서 선문답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불교의 핵심 진리인 연기법(緣起法)을 잣대로 선문답을 해석했다. 그는 “연기는 주고 받음의 관계”라고 풀이했다. 흔히 주고 받는 주체와 객체를 상정해 연기를 상대적 개념으로 생각하는데 그보다는 어떤 끈에 매어 있는 상태, 그 안에서 주고 받는 교환이 이뤄지는 세계라는 것이다. ‘나’라고 하는 변치 않는 주체가 없다는 생각은 바로 불교의 중도(中道) 철학이다.

 이 교수는 “우리 가정과 사회, 사회와 국가, 지구와 태양계, 하나의 성단을 이루는 수 많은 별들은 모두 끈으로 서로 묶이고 얽혀 있는 것 같은 관계”라고 설명했다. 천문학이 바탕에 깔린 논리 전개다.

 그는 “마찬가지로 행복과 불행 역시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라고 했다. 행복이나 고통 자체가 실체가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집착 역시 부질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종교가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생각도 잘못”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유명한 ‘뜰 앞의 잣나무’도 연기법으로 해석한다. 한 스님이 조주 선사에게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라고 묻자 ‘뜰 앞의 잣나무’라고 답했다는 선문답 말이다. 뜰 앞의 잣나무는 그 안에 법성을 지닌 부처가 있는 존재로, 불법은 어디에나 존재함을 뜻한다는 게 이 교수의 해석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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