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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운명이 북악에 담겨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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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휘장을 보면 건물 뒤로 삼각형의 도형이 있다. 북악산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만큼 청와대는 북악산과 뗄 수 없는 관계다.북악산은 풍수 이론에 따르면 청와대의 주산이다. 이 북악산에 청와대와 대통령들의 운명을 예견한 징표가 담겨 있다는 한 풍수 연구가의 주장이 있다. 대선을 두달여 앞둔 지금, 흥미삼아 그 이야기를 들어본다.

역대 대통령들이 청와대로 초청한 인사 중에서 가장 정중하게 맞이했던 귀한 손님은 누구였을까. 물론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확신한다. 조상을 명당에 모신 은택으로 대권을 잡았다고 믿거나, 조상의 유골을 암장이나 이장한 뒤에 당선된 분들은 산소 터를 소점(所點)해준 풍수지리가(地官)였을 것이라고.
“대통령 내외분이 주차장까지 내려와 승용차 문을 직접 열어주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더구먼. 요구사항을 다 들어줄 테니 말하라고 하더라고. 물론 두툼한 봉투도 받았지….”

청와대로 초대받았던 한 지관이 필자에게 직접 전해준 경험담이다. 대부분의 지관이나 풍수 연구가들은 역대 대통령 중 풍수지리로부터 자유로운 분은 없다고 보고 있다. 조금 비약하면 모두 대권을 잡기 위해 풍수지리를 이용했거나 신봉했다는 말이 된다. 이는 각종 여론 매체를 통해 심심찮게 보도되기도 했다. 청와대 풍수와 역대 대통령들의 음택(조상묘), 양택(생가) 풍수에 대해서도 더러 기사화됐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말은 아니다.

필자는 전공이 환경학이다. 자연히 환경 생태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서양학의 관점에서 본 환경 오염과 환경 생태는 어느 정도 토대를 닦았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동양학의 관점에서는 캄캄했다. 동양학의 관점에서 환경 생태를 접근하다 보니 결국 풍수지리에 끈이 닿았다. 비록 풍수지리가 개인의 발복 수단으로 파생된 것이기는 해도 그 밑바탕에 환경 생태 사상의 흐름이 살아 있음을 발견하고 나름대로 공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풍수 연구가들과는 보는 각도가 다르리라는 것을 전제로 깔고 이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대통령과 관련된 풍수 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할 것이다. 요지는 역대 대통령의 운명이 청와대의 주산인 북악산 바위에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암석풍수(巖石風水)의 관점에서 본 분석으로,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제왕석(帝王石) 풍수’가 타당할 듯싶다. 제왕석 풍수, 독자들께서는 처음 접하는 용어일 터이다. 대체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목소리가 큰 사람이 명 지관?

고려·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 연구되고 있는 풍수 이론은 크게 이기론(理氣論)·형기론(形氣論)·물형론(物形論) 등 세 갈래로 구별할 수 있다. 이기론은 물길의 흐름을 중시하는 풍수 이론이다. 패철(나침판)을 사용해 물길과 방위의 함수관계로 좌향(坐向:무덤이나 집터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이기 풍수의 핵심이다. 형기론은 산줄기의 흐름과 산세의 모양 등 용맥을 보고 지기(地氣)의 흐름과 혈을 찾는 풍수 이론이다. 물형론은 지형지세의 모양을 사물에 견주어 터를 평가하는 풍수다. 예를 들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고향마을 형국이 모래밭에 기러기가 내려앉는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평사낙안형(平沙落雁形) 명당이라고 하는 것이 물형론이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가장 용합니까.”

풍수에 깊이 관심을 가져 보지 않은 분들은 당연히 이런 물음을 던질 만하다. 필자는 단언한다. “정답은 없다”고. 보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는 뜻이다. 풍수란 어차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물길과 방위를 중시하는 이기론자들은 주로 패철을 이용한다. 그런데 묫자리(음택)나 집터(양택)를 잡을 때 패철의 복잡한 방위를 따지지 않고 남향이나 남동향을 선호하는 지관들도 있다. 게다가 패철의 방위가 과연 정확한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패철이나 지도상의 방위와 진짜 방위가 정확하게 일치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패철상의 북쪽(磁北)과 지도상의 북쪽(圖北)이 진짜 북쪽(眞北)과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패철로 방위를 측정해 보면 패철마다 약간의 오차가 있다. 하물며 풍수에서 많이 사용하는 48방위나 24방위는 조금만 오차가 생겨도 좌향이 크게 비뚤어진다.
물형론도 그렇다. 흔히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땅을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백학이 알을 품는 모양의 땅을 백학포란형(白鶴抱卵形), 나는 기러기 모양의 땅을 비안형(飛雁形) 등으로 평한다. 그런데 그 넓고 넓은 산세를 두고 닭·학·꿩·기러기 모양으로 구별해 내는 자체가 주관적 판단이다. 뻗어 있는 두 산맥을 두고 어떤 지관은 새의 날개처럼 보인다고 하고, 어떤 지관은 달리는 호랑이의 다리 같다고 판단하기도 하는 것이다.

형기론도 마찬가지다. 지기(地氣)가 결혈되는 혈처(穴處)를 판별할 때도 지관의 주관에 따라 다른 경우가 많다. 그러니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단정할 객관적 기준과 근거가 없는 것이다. 묘소나 집 앞의 산을 풍수에서는 안산(案山)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부 지관은 앞산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산으로 여기지 않는 반면 어떤 지관은 안산으로 본다. 주산에서 안산까지의 거리를 어느 정도로 봐야 한다는 근거가 없다. 주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객관적으로 증명해낼 수 없는 것이 풍수지리의 신비함인 동시에 한계인 것이다.

일화 한 토막. 한 지방 부호가 부친상을 당해 용하다는 지관 몇 명을 불러 묫자리를 잡게 했다. 그런데 지관마다 견해가 모두 달랐다. 결국 목소리가 가장 큰 지관이 이겨 두둑한 패철값을 받아 갔다고 한다.
서두를 장황하게 떠벌인 까닭은 필자가 제기할 ‘제왕석 풍수’도 기존 풍수와 마찬가지로 과학적 근거는 없으며,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자료도 없기 때문이다. 한 마디 더 나아가면, 제왕석 풍수를 구전(口傳) 풍수 정도로 가볍게 받아들여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은 덧붙이고 싶다. 이런 구전성 풍수가 이론을 바탕으로 한 기존 풍수보다 오히려 현실과 더 맞아떨어지는 사례가 심심찮게 있으므로 간과할 수 없으며, 더 깊이 연구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청와대 휘장.뒤의 녹색 삼각형은 북악산이다.은연중 우리의 정서 속에 북악산과 청와대는 떼어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있음을 방증하는 것은 아닐까.
풍수 신봉자들

풍수지리를 연구하다 보면 풍수를 신처럼 믿는 신봉자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이들은 주로 세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일부 권력층이다. 이들의 상당수가 풍수지리를 믿고, 이른바 명당에 조상을 안장했거나 이장하고 심지어 암장까지 한 것으로 전한다. 특히 고위층으로 올라갈수록 풍수지리의 덕을 보려는 사욕의 강도가 더 심한 편이라는 것이 알 만한 지관들의 공통된 말이다.
이는 풍수가 성행했던 고려·조선시대의 풍수문화와 상통한다. 당시 풍수지리는 왕족을 비롯한 사대부 집안 출신들의 전유물이었다. 일반 백성들이 명당에 조상을 모시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어쩌다 일반 백성들이 명당에 성분이라도 하면 왕족을 비롯한 양반층들이 그 유골을 파내 버리고 자신들의 조상 유골을 넣는 환골(換骨)도 서슴지 않았다.

굳이 고려·조선 시대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지난 대선때 모 후보의 조상 묘에 칼침을 놓은 경우나 일제가 명산에 쇠말뚝을 박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쇠붙이는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고 물의 경계에서 멈춘다’(氣乘風則山 界水則止)는 ‘기’(氣)의 상극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금은 돌아가신 한 지관으로부터 최근까지도 이 환골의 악습이 극비리에 자행되었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더구나 그 중 한 명은 대권까지 잡았다는 것이었다. 풍수의 참정신은 인과응보일진대, 이 풍문대로 명당을 훔쳐 대권을 잡았다면 그 말로가 염려되지 않는가.

풍수 이론의 원전 격인 ‘금랑경’의 원래 이름은 ‘장경’(葬經)이다. 그런데 당나라 현종을 비롯한 왕족들이 이 책이 왕족 이외의 일반인들의 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비단주머니 속에 감춰 두고 봤다고 해서 금랑경이라는 별칭으로 통용된다. 예나 지금이나 풍수지리가 일부 권력층의 권력 유지나 권력 쟁취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풍수를 신봉하는 두번째 부류는 일부 재력가들이다. 제법 큰 사업을 하는 사람치고 풍수지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드물다. 조상의 묘가 파묘된 이후 산소 주위에 경비까지 세우는가 하면, 명당을 미리 사 가짜묘(假墓)를 만들어 부를 세습하려는 재력가도 있다고 한다.

이렇듯 풍수는 자신이나 후손의 발복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해를 입히는 도구로 악용되기도 한다. 이는 모두 환경 오염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는 오늘날의 환경 논리와 맥이 닿는 부분이기도 하다. 풍수지리의 참된 의미는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이 인간을 보호하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일진대 예나 지금이나 풍수지리가 사욕 쟁취의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집안에 불행이 겹쳐 오는 경우에도 풍수에 매달리게 된다. 필자의 직간접 경험에 따르면 원인도 모르게 집안이나 신상에 불행과 비극이 닥칠 때 종국적으로 풍수를 찾는 분들이 꽤 있었다. 풍수가들은 그 원인을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으로 돌린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는 약간 다르다. 앞에서 적시한 대로 풍수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은 분명할 것이다. 이장 혹은 이사했다는 행위 자체가 심리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망지에 들어가 보면 기분이 영 좋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런 곳에 오래 기거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나쁜 영향이 미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따라서 망지는 주거지로 이용할 것이 아니라, 망지 나름대로의 이용가치가 있는 방향으로 쓰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인 토지 이용 계획이라고 본다.

풍수지리를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로 산(山)·물(水)·방위(方位)·사람(人)을 주로 든다. 산의 구성 성분은 흙·수목·물·동식물 그리고 돌·바위 등이다. 그런데 기존의 풍수지리 이론에는 암석에 대한 언급이 극히 미미하다. 흙뿐만 아니라 돌·암석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왜 암석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한 바가 적을까. 이 의문이 암석풍수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청와대의 주산인 북악산의 제왕석 풍수는 암석풍수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접한 구전풍수를 기초 자료로 집약한 것이다.

암석풍수를 보는 관점

일반적으로 풍수계에서는 암석이 있는 땅이 흙만 있는 곳보다 기운이 훨씬 강하다고 본다. 지기(地氣)가 뭉쳐 암석이 되었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실제로 암반에 집을 짓고 사는 분들의 가계를 조사해 보면 두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하나는 뜻하지 않은 불행한 일을 많이 겪었고, 다른 하나는 그런 가운데서도 가족 중에서 뛰어난 분이 배출되었다는 것이다. 전자는 강한 땅기운을 이기지 못한 경우이고, 후자는 강한 지기와 부합하는 경우라고 필자는 분석한다. 땅마다 힘이 다르듯 사람마다 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대구 생가를 보자. 노 전 대통령 생가는 마당 입구에 자연암석으로 계단을 만들고, 집 주변에도 암석이 많다. 노 전 대통령 일가가 그 집에 기거한 뒤의 가족사를 보면 그의 선친을 비롯해 불행이 겹쳤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대권을 잡았다. 노 전 대통령은 그 집의 강한 기운에 부응할 만큼 기가 강한 소유자인 데다 일찍 그 집을 떠나 강한 지기의 영향을 오래 받지 않았기 때문으로 필자는 풀이한다.
필자는 암석풍수를 판별할 때 모양·크기·위치·색깔(石色) 등을 주요 포인트로 본다. 모양은 말 그대로 암석의 생김새다. 예부터 모양이 좋은 암석은 귀인석(貴人石)이라 하여 명당의 한 요소에 포함시켰으며, 모양이 좋지 않는 암석은 흉석(凶石)이라 하여 주변 형국이 아무리 좋더라도 흉석이 있으면 명당으로 치지 않았다.

최규하 전 대통령의 선영을 잡아준 한 지관은 이 가문에 한 세기 안에 반드시 영상(領相) 격의 인물이 난다고 장담했다고 한다. 영상 격에 버금갈 만한 귀인석이 산소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최 전 대통령이 국민들이 직접 뽑는 선거에 출마해 박빙의 싸움을 펼쳤다면 상대 후보측에서 그 귀인석을 훼손하지 않았을까.
암석의 크기는 터 주인공의 인물 크기와 부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암석이 너무 작거나 돌멩이가 많은 땅은 지기가 결혈될 수 없는 좋지 않는 터로 보며, 암석이 너무 크면 앞에 설명한 대로 사람이 그 지기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필자는 해석한다.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친환경사상과 상통하는 것이다. 암석의 위치는 집터나 묘터에서 암석이 있는 방위와 거리를 말하는데 각 요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암석의 빛깔은 늘 일정하지 않고 변하는데 변하는 정도와 모양 그리고 시기에 따라 풀이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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