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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달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10월이 영글어 가고 있다. 낙엽은 아직 없어도 어느 곳에서나 자연의 아름다운 장송곡이 들린다.
마치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곱게 단장해 보는 미인처럼 산이, 들이 그리고 하늘이 찬란한 죽음의 나들이옷을 입는다.
자연은 어쩌면 삶보다도 죽음 속에서 형광을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분명히 별리와 조락의 10월은 신생의 5월보다 더 아름답다. 분명히 모든 푸른 것들은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고 죽기를 원하는가 보다.
그러나 10월의 자연이 마지막으로 베푸는 이 아름다운 향연의「케이던스」(운율)에서 사람은 무엇을 느낄 것인지? 10월의「프리즘」을 통해서 보이는 자연에서 무엇을 생각하게 될 것인지? 바람처럼 달려오던 한 도사가 단풍나무 옆에 깔린 바윗돌을 보고 그 위에 주저앉아서 땀을 씻었다.『당신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나요?』바윗돌이 물었다.
깜짝 놀란 도사가 벌떡 일어났다.『자넨 언제부터 여기 있었나?』『생각이 나지 않는군요.』돌이 대답했다.『심심하진 않나?』『처음엔 무척 외롭더니 이젠 좀 나아졌읍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얘기도 하고 또 이 단풍나무를 완상 하기도 하구….』 돌의 얼굴에 쓸쓸한 그늘이 진다.『당신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보는 게 많겠군요.』『암, 나야 하루에 천리 길을 뛸 수 있으니까, 안 가본 데가 거의 없지.』 도사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뭣 때문에 그렇게 뛰어다니나요?』『행복을 찾아 서지.』『그래 이젠 찾았나요?』『아냐, 아직…. 그러나 곧 찾게 될 걸세.』이렇게 말하는 도사가 왠지 측은해 보인다. 단풍진 나뭇잎이 하나 둘씩 조용히 떨어진다. 그제 서야 도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이젠 가봐야겠군.』『왜 좀더 쉬지 않으시고?』『그럴 시간이 있어야지.』도사는 다시 바람처럼 달려간다『공연히 네가 저 사람을 쫓아버렸구나.』바윗돌은 말없는 단풍나무를 향해 중얼거린다. 『저 사람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게 있었는데…. 』벌써 10월 멀지않아 마지막 장미꽃도 떨어진다. 사람들의 마음에 가을이 찾아든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윗돌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게 아무리 서글픈 것일지라도 마냥 뛰어다니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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