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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데 왜 목이 아프냐고요, 나한테 강의하기 때문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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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민군이 자신이 정리한 노트를 보며 스스로에게 강의하고 있다. 박군은 책상에 앉지 않고 집 안을 오가며 공부한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있는 양천고에 다니는 박승민(15·1학년)군이 공부를 시작하면 온 집안이 시끄럽다. “어린 시절의 농촌과 관련 지은 점 등을 살펴보면 작가의 개성은….” 박군은 마치 누군가에게 강의하듯 목소리 높낮이까지 신경 쓰며 집안을 오간다. 때론 손짓까지 섞어가며 중요한 부분을 강조한다. 열정적 강의 때문에 늘 목이 아프다는 박군은 “누군가에게 가르치듯 공부하면 이해가 더 잘되고, 부족한 부분도 금방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수업 중엔 꼼꼼하게 필기하고, 복습할 땐 반드시 스스로에게 강의하는 박군에게 책상은 그냥 책 두는 곳일 뿐이다. 엄마가 차분하게 공부하라며 최근 독서실 책상을 사줬지만 아직은 본인의 공부법을 바꿀 생각이 없단다.

수석 입학, 중간고사·3월 모의고사·6월 모의고사 전교 1등. 박군의 고교 입학 후 지금까지의 성적이다. 공부만 하는 게 아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학급 회장을 했다. 성격이 워낙 완벽주의라 공부건 학급 일이건 끝장을 본다. 엄마 이승희(40)씨는 “학급 대항 축구대회 할 때는 온 정신이 거기 쏠린다”며 “유니폼을 주문하면 그냥 나눠주는 게 아니라 일일이 친구 이름 붙이고 개별 포장해서 줄 정도”라고 말했다. 엄마 입장에선 답답할 노릇이다. 하지만 이씨는 “남자애들은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막으면 역효과가 난다”며 “차라리 빨리 끝내게 도와줘서 다시 공부에 집중하도록 한다”고 했다.

 엄마는 박군의 이렇게 끝장을 보는 성격을 어린 시절부터 학습에 활용했다. 가령 동물에 푹 빠져 있던 세 살 때는 동물 스티커를 냉장고에 붙여 놓고 틈 날 때마다 각 동물 특성을 설명했다. 따로 얘기 안 해도 박군은 어느 순간 자기가 자료를 찾아보고 육식동물과 초식동물 식으로 분류를 하더란다. 박군은 “어려서부터 분석하기 위해 자료를 찾고 요약하는 버릇이 있었다”며 “교과서 외에 자료를 따로 찾아보는 게 몸에 밴 게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본인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참가했던 각종 탐구대회와 수학 관련 대회의 주제와 상장도 깔끔하게 분류한다. 박군은 “참가한 대회의 상장과 제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모아뒀다”며 “어떤 동기로 참가했고, 어떤 자료를 활용했는지를 전부 적어두기 때문에 나중에 비슷한 대회에 참가할 때 도움이 된다”고 했다. 아이디어를 찾는 데는 물론 당시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 알고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료를 모으고 요약하는 습관은 중학교 때 서울대학교 영재교육원에 다니며 더 체계적이 됐다. 이곳에선 바다라는 주제를 공부하면 바다의 특성과 물고기 종류만이 아니라 수면과 해저 등 폭넓은 개념까지 다룬다. 관련 자료 찾기부터 사고를 확장하는 방법까지 배울 수 있었던 거다.

 박군은 “단순한 문제풀이보다 스스로 자료를 찾으며 심도 있게 배우니 학업에 대한 흥미가 더 커졌다”며 “주제를 이해해야 딱 맞는 자료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평소 다양한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실제로 박군 집에는 문제집보다 수학·과학 관련 도서나 백과사전, 논문집이 많았다. 공부하다 모르는 게 나오면 자습서를 보지 않고 관련 자료를 찾으며 개념부터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박군은 “내 공부 방식이 느리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개념부터 완벽하게 이해하기 때문에 결국은 빠른 공부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군의 과학B 화학 노트. 색깔 펜을 활용해 한눈에 보기 쉽게 정리했다.

 이렇게 자료를 찾은 다음 노트에 정리한다. 학교 선생님이 강조한 건 파란색, 본인이 찾은 자료는 빨간색, 시험에 나올 법한 내용은 형광펜 등으로 구분해 노트를 정리한 후 스스로에게 강의하듯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설명한다.

 설명하다 보면 ‘왜’라는 궁금증이 반드시 튀어나오는데 그걸 설명하지 못하면 바로 인터넷과 논문집, 각종 자료집을 찾아 다시 짚고 넘어간다. 때론 친구들에게 강의를 하기도 한다. 친구가 수학이나 과학이 어렵다며 도움을 청하면 주저 없이 바로 도와준다. 친구에게 알려주면서 공부가 되기 때문이다. 박군은 “내 공부법에는 듣기, 쓰기, 말하기 3박자가 있다”며 “대부분 듣기, 쓰기만 하는데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들려면 말하기로 정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영어는 아예 나만의 강좌를 만들어 MP3에 담은 후 수시로 듣는다. 박군은 “교과서를 직접 녹음해 MP3에 담아 듣는다”며 “모르는 단어는 설명까지 달아 녹음한다”고 했다. 본인이 정리한 내용을 토대로 교과서 지문을 듣기 때문에 발음도 챙길 수 있고 오래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박군 성격이 워낙 꼼꼼해 엄마 손이 거의 안 가는 편이지만 엄마도 나름대로 아들을 돕는다. 이씨는 하루 한 번 학교 홈페이지를 방문해 공지사항과 학사 일정을 챙긴다. 이씨는 “학사 일정 파악이 중요하다”며 “보훈편지 쓰기 대회가 있으면 미리 아이와 식사하면서 자연스럽게 관련 주제를 이야기하며 아이가 미리 생각할 시간을 준다”고 했다. 한 번이라도 미리 생각하고 대회에 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외할아버지는 박군의 열렬한 학업 조력자다. 중앙일보를 비롯해 웬만한 신문은 다 본 후 꼼꼼히 스크랩해 박군을 만날 때마다 전달해 준다. 박군은 “외할아버지가 사회 문제나 역사적 사건, 정치 이야기를 스크랩한 후 설명해 준다”며 “따로 뉴스 챙겨 보기 어려운데 시간이 많이 절약된다”고 했다.

 사실 박군은 수학·과학 과목을 좋아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과학고등학교 진학을 목표로 했다. 그런데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당시 충격이 컸다. 박군은 “처음 며칠 굉장히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이 됐다”며 “수학·과학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과목을 두루 배우며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과고에 갔다면 대학 수준의 공부를 2학년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빡빡한 일정이었을 것”이라며 “이해가 될 때까지 꼼꼼하게 공부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빠른 템포의 학사 일정이 힘들었을 수 있겠다 싶다”고 덧붙였다.

 꼼꼼한 박군은 일요일에도 빈틈없이 지낼까.

 그렇다. 일요일에 일주일 계획을 미리 세운다. 또 일주일간 외운 단어를 확인한다. 매일 단어 50개씩 외우고 자기 전에 외운 내용을 확인하는데 틀린 단어는 따로 정리해 일요일에 다시 한번 확인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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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소엽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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