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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시민생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크리스천·아카데미가 마련한 대화의 모임이 법과 시민생활이라는 주제를 놓고 지난 19, 20일 서울수유도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렸다. 학계·법조계·언론계 등 인사 약30명이 참가한 이 모임에선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의 법의 위치와 영향력, 준법과 재판의 문제점 등이 논의되었다. 다음은 주제강연 중에서 이시윤 교수(서울대법대)의 권리행사의 장애요인과 차기벽 교수(성대·정치학)의 정의와 준법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권리행사 장애요인>(이시윤·서울대법대교수)
재판제도 특히 민사상의 권리행사를 중심으로 그 장애요인을 분석해보면 첫째, 한국국민들에겐 권리의식이 희박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남으로부터 분명히 침해를 당하고도 억울한 일을 법에 호소해야한다는 생각보다는 숙명적인 체념으로 넘겨버리는 사고방식, 또 인간관계에 있어서 아직도 봉건적 습관에서 오는 신분관계로 처리해버리고 명확하고 대등한 계약관계에 훈련돼있지 못하다. 재판을 통한 권리행사가 사회에선 악덕으로 돌리는 경향을 봐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법치주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또 법이 치자를 의한 것이고 피치자를 위한 것이 못되었다는 사실, 관용차엔 후하고 영업차엔 엄한 따위의 예로서 법 앞에 평등이 국민의식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법을 직접 다루는 층의 권위주의와 불친절도 국민이 법을 소외하는 이유로 꼽히고 있다.
재판제도 그 자체로 봐서도 국민들이 법을 멀리하는 요인이 많다.
외국처럼 변호사비용이 법률로 공정화되지 않아 엄청난 소송비용을 감당해야하고 한번 고소를 했다고 하면 으례 상급심까지 가는 소승기간의 장기화, 법정이율이 사회의 화폐가치저락을 따라가지 못하는 비현실적 제도 등, 재판이라는 것이 한마디로 귀찮고 별로 이득도 얻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이 되고있음은 또 많은 변칙적인 행사로 변모되어 문제를 낳고있다.

<정의와 준법>(차기벽·성대정치학교수)
법은 정의를 증언해내고 자유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법이란 것이 자유를 구속하는 것으로 오해되고 준법이 비정상으로 일반국민들에게 오해되고 있음은 무슨 이유인가.
법은 근본적으로 정의에 입각해야 한다.
이는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국가권력이 정당한가로 그 기준을 삼아야 한다. 다시 말해 지도층을 선출하는 선거가 얼마나 공정한가, 또 지도층을 배출하고 있는 사회계층이 대표성을 띠고 있는가로 척도를 삼을 수 있다.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것은 법이 피치자만 구속하는 것이 아니고 치자도 같이 구속돼야 한다는 말이다. 법이 과연 누구를 위하여 생긴 것인지에 따라 준법정신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그리하여 법제주의의 생명은 얼마큼 ,피치자가 치자를 컨트롤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즉 선거를 통해 입법권자인 국회의원을 컨트롤하고 국회의원이 행정권력을 컨트롤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인 것이다.
다음 법이 잘 지켜지기 위해서는 선량한 시민들이 법을 지키면 이득을 본다는 체험을 직접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법이 시민생활에 혜택을 주기보다는 구속하는 도구가 되고 법을 어기는 자가 오히려 잘 사는 식의 보편주의가 뼈저린 생활경험으로 통한다면 법을 영영 지킬 수 없는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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