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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예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22일 보사부에 의하면, 71년도부터 시행예정이던 의료보험제의 확대가 전면적인 예산삭감으로 당분간 무망하게 되었다 한다. 현재의 의료보험법은 5백명 이상을 고용한 사업주는 피고용자가 공무나 업무이외의 질병·부상·사망 또는 분만 시, 의료보험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거의 지켜지지 않았으며, 강제보험에 가입한 업체는 전국을 통틀어 3개소 밖에 안 된다고 한다.
보사부는 의료보험의 가입을 확대하기 위하여 강제가입 시키도록 하고 의료보험을 전국민에게 실시하기 위하여 의료보험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지난 8월에 이를 통과시켰으며, 오는 11월6일에는 이를 공포시행 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보사부는 우선 근로자 10만명을 피보험대상으로 확대키로 하고, 71년도에 2억원의 예산을 요청했던 것인데, 이것이 경제기획원에 의해 『아직 이르다』는 이유로 전액 삭감 당함으로써 개정법이 공포되더라도, 예산이 없어 이의 실시는 당분간 바라볼 수 없게된 것이다.
그러나 경제기획원이 의료보험제도의 확대를 시기상조로 보는 것은 단견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 공무원·근로자 또는 군인들의 봉급이 생활급에도 미달하여 대부분이 저축이라고는 한푼도 없는 현실에서 이들이 질병에 걸릴까 전전긍긍하고 있음은 정부 당국자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에 불행히도 이들이 질병에 걸리는 경우, 입원비나 치료비가 없어 매약이나 민간요법을 사용하여 시일을 낭비함으로써 불치의 만성병으로 된 뒤에야만 병원을 찾게 되고 이 때에는 이미 늦어 건강을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 통례이다.
질병에 걸린 자는 실업하게 될 것이며, 실업발병자만 늘어나게 되어 정부는 생활구호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는 때도 의료보험이 시기상조라고 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근로자들이나 공무원들이 정기적인 신체검사를 꺼리는 근본이유도 병명을 알아봤자 치료할 돈이 없어 치료는 할 수 없고 의기만 소침해진다는 체념 때문이니, 이들에게 의료보험의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시급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근로자들이 의료보험에 가입하여 병들어도 현금 없이 안심하고 병원에 가서 치료할 수 있으면 정신건강에도 좋고 노동능률의 향상에도 크게 이바지할 수 있으며, 직업병의 예방치료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만일 당국자 가운데 사회보장별도의 실시가 눈에 보이는 전시효과가 적다는 이유로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단견도 이만 저만한 것이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콜레라발생 때문에 수출 면에도 눈에 보이는 손해가 불가피하게 된 것을 직접 체험하고서도 예산당국이 방역비를 등한시하려 들고, 의료보험을 확대하기 위한 의료보험조합설치기금 등 불과 2억원의 예산을 전액 삭제한 것 등은 정부의 사회보장정책에 대한 전적인 무감각을 표현한 것이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의 조문을 들출 것도 없이 모든 국민은 최소한도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적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국가는 국민의 건강을 보호할 의무를 지고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전시위주의 정책에만 치우쳐 국민의 사회복지문제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나 결코 현명한 처사는 아닌 것이다. 선진국처럼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사회보장은 대할 수 없을 망정, 정부 당국자가 근로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건강 보험사업조차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사회보험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처사라는 비난을 받아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대저 정부예산편성에 있어 전년도예산비목에 없던 것은 삭감하고 전년도에 있던 비목은 거의 기계적으로 20%정도 올려 주는 식의 예산편성 태도나 또는 발언권이 강한 부처에는 상투적으로 많은 예산이 배정되고 이에 반하여 비교적 발언권이 약한 부처에는 그 소관 사업의 경중을 막론하고 형편없이 모자란 예산이 배정되는 등 악폐는 이제 당연히 지양돼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국회는 예산안 심의에 있어 필요 없이 증액된 많은 예산항목은 과감히 삭감하고, 그 대신 국민의 일상생활에 직결된 의료보험 예산 등은 신설토록 하는 등 그에게 부여된 예산심의권의 적극적인 활용을 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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