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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신문화 혁명 일으킨 신호신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우리들은 신문인으로서 지역사회의 발전과 복지의 향상에 주력한다.』 세계의 많은 신문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일본의 신호 신문 사훈이다. 지역사회개발을 사시로 내세운 신호신문은 실천방침으로「관용정신」조호신백와 새로운 질서 인문존여 새로운 인문상 사람과 사람의 속결 공동사회개발 등 언제나 신의 성격과 사명을 제자 앞에 명백히 하고 거사적인 프레스 캠패인을 전개하고 지면을 통해서 뿐만아니라 경토진흥조사회 야로변문장 변패제로서 지만적인 책 OAA 등 외곽단체를 앞강서 놨다.
지성사회를 위해 주민과 손을 맞잡고 개발에 협력한다는 CP방식에 의한 지면제작은 1962년 6월1일 동신문의 명석지방에서 실행 되었다. 「지역사회를 위한 신문」으로서 종내엔 휴지통에 버린 자잘구레한 기사가 소생하고 지리와 이어진 지면을 작성하는 내신에 신호신문을 매체로한 「뉴스」의 전달, 나아가서는 지백에 반영시키는 신우신문계로서는 처음으로 교호통신의 지면을 만든 것이다.
「명석지방판」에 CP방식을 채택하던 날 사세에서도 「CP방식에 의한 신문제작」이란 제목하에 「지역신문」의 의의를 세명했다. 이 CP방식에 의한 신문제작은 막다른점에 이른신문판매에도 새로운 활로를 열었다.「신문의 신경지」「지방지 혁명」으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켜 제22회전국신문대회에서 처음으로 「지역사회개발과 신문」 이라는 「테마」가 채택되었다. 이어서 지방지가 전수지 또는 대도시 신문과 대항해서 우존하는 유일한 길이 CP방식에 의한 제작이라는 균증을 본 떠 유수한 지방지들이「신호신문」의 뒤를 이었다. 신문의 생치화, 지방지의 생활신문화혁명은 대륙을이뤄 논 샘이다.
이 혁명을 주관한 신호신문의 전전 일낭주필은 『새로운 신문은 야당정신보다 사정 거추안에서 상대를 포착해야한다』 고 말했다. 원내 신호는 뜨내기의 번합도시. 거기에 대판이 이라는 관서의 대도시와 인접하고 있기 때문에 신호에 대한 시민의 경토애가 결여되어 있다. 때문에 고내의 전통이 없고 개인주의가 팽일되어 있다.
69연도의 시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더라도 『신호를 좋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람이 전체의 30%에 달할 정도. 더욱이 1960년께부터 신문의 현력한 라이벌로 TV가 일본에서 보급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신호신문은 사원전체의 머리를 짜내어 새로운 상품 새로운 것을 고안해 궁지에서 헤어나야만 했다.
생활 신문화를목표로 줄토진흥조사회가 발족했다. 조사회는 사회부장급으로 사무국장·사회부차장급 3명을 배치하여 신호신문의 보급영역인 신호시와 병고현 전체에 대한 종합생활지표 작성에 덤벼들었다.
진흥조사측의 문행 보고는 병고현지사,신호시장,근고현상공회기소회사, 그리고 신호신문사장 등 4명으로 된 회장회에 보고되었고 진흥조사회의 조표활용은 현 과시의 행정기구의 절대적인 협조를 받았다. 커뮤니티·페이퍼로서 기사는 개가 사람을 물어도 「지역사회의 행복망과 연결되는 것이면 취급되었다. 새로 태어난 아기의 이름, 죽은 사람의 이름, 습득물· 정전· 도로공사, 심지어는 국민장의 선거에 의한 학년회장 명단도 다뤼졌다.
경토의 실정 소재를 파악하기 위한 과학적 진연은 병고를 단파·파주·판신·담노 등 5「블록」으로 나눠 저명한 학자까지 동원되어 착착 진행되었다. 병고현은 태평양연안에서 동해연안까지 이어진 일본에서 드문 고장. 「남진북퇴」란 말이 있지만 처음에는 북일본에 속하는 단파가 제일 덜어졌으리라고 예상했더니 진단결과는 남일본의 담로지역이 병고현에서는 제일 뒤진 곳으로 판명되었다.
담로지역은 가계는 적자이고 생활보호 대상자가 최고로 많았으며 유아의 사망율도 최고, 유아부루병(왈광이나 비타민B가 부족할 때 생긴다)에 걸리는 율이 20%에 달했고 아동들의 「트라훔」이 확율이 26% (전국평균은 5%) 에 이르는 참혹한 것이었다. 병원수도 부족한데다가 병원의 침대수는 최저, 소년 범죄율은 높았다.
신호신문은 이 조사에 따라 주민상가의 공동사회개발의 모델인 지역으로 담로지구를 택하고 담로도에 대한 대대적인「프레스·캠페인」을 전개하기로 결정했다. 편집국 안에 사회감 중심의 전문 조사보도실을 두고 경제부와 논설위원실이 지원, 담노지역 공동사회개발 특별취재정을 편성, 현지의 생활 속에 파고들어 전후 28회에 걸쳐 담노의 주민들에게 호소한다는 기획 기사를 연재했다.
기사의 반향은 대단해서 일부주민의 항의 소동도 있었지만 직접 현지사를 동행시켜 최종점 행정지역으로 지정하는 한편 강력한 행정지원을 가하도록 신문이 감시했다. 신호신문의 공동사회 개발을 위한 노력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병고현상 군빙산정을 모델로 한 핵추방 운동 답마 중공업지대 촉진 청소년을 지키는 연동 시인중학· 옥진중학의 폭력교실 등 프레스캠페인을 연이었다.
담노 「캠페인」 의 결과로 유아 사망율과 「트라훔」이 활율은 바로 전국평균에 접근했고, 이를 계기로 해서 주민 조직운동이 벌어져 행정기구와 주민외 유대가 강화되고, 고등학교엔 지역개발과가 신설되어 현 전체가 지역발전에 눈을 뜨게된 것이다. <조동오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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