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末寺주지 임명권 지방 本寺로 이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스님들의 걸음걸이를 바르게 하여, 말하자면 승풍과 수행.포교.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질서를 이뤄내 신뢰받는 조계종단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전하는 불교로 성숙하겠습니다."

24일 대한불교 조계종 제 31대 총무원장에 당선된 법장 스님(63.수덕사 주지)은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 임기 4년 동안 불교계의 성숙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법장 스님은 또 한국 불교를 외국에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하겠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에 따르면 외국에 나가보면 21세기 인류에게 행복을 안겨줄 수 있는 것은 동양사상, 그 중에서도 한국 불교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는 것.

그러면서 법장 스님은 "우리 불교계는 보배를 갖고도 세상 사람에 널리 전하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그가 우리 불교의 국제화를 주창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그는 외국인들을 한국으로 불러 들여 수행관에서 6개월 혹은 1년 정도 불교를 체험하게 한 뒤 그들에게 전교사 자격을 줘서 외국에서 포교활동을 하도록 배려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해 관심을 모았다.

한국 불교를 전파하는 수단으로 인터넷 활용 방안을 거론한 것도 주목된다. 인터넷과 새로 건립할 외국인 전용 수행관을 온.오프의 중심축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인터넷은 영어.일어.중국어.프랑스어.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꾸밀 예정이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대목은 말사 주지 임명권을 각 지방 본사로 이양하고 중앙에 내는 분담금을 줄여 총무원의 권한을 대폭 줄이겠다는 점이다. 법장 스님은 1년 안에 조계종 개혁을 위한 청사진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신임 법장 스님은 1960년 수덕사 방장인 원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 총무원 사회부장과 재무부장을 거쳤으며 재소자 교화사업과 장기기증운동 등 사회활동을 활발히 펴왔다. 스님이 94년에 조직한 생명나눔실천회는 장동건 등 연예인들이 이 단체를 통해 장기기증 서명을 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법장 스님은 2001년에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총림의 주지란 무척 힘든 자리다. 총림의 어른들을 깍듯이 모셔야 하는 한편 화합을 위해 다른 '형제' 스님들도 두루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리를 법장 스님은 10년 이상 무난하게 꾸려왔으니 그의 화합정신이 남다름에 틀림없다. 오늘날 수덕사가 총림다운 격을 갖추고 문화의 향기가 넘치는 사찰로 성장한 것도 법장 스님의 화합정신과 결단력이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 불교계의 평가다.

법장 스님은 주지방을 잠그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대한 스님의 설명은 이렇다. "경비원을 두고 감시 카메라를 설치한다해도 물건을 가져갈 사람은 어차피 가져갈 것이기 때문에 문을 잠그면 도둑 맞아 손해고 망가져서 손해니까 문을 부수지 말고 가져가라는 뜻입니다."

법장 스님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는 인재 불사(佛事)다. 인재를 잘 기르는 것이 가람을 잘 지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뜻에서다. 재소자 교화.어린이 포교.생명살리기.수행자 봉양 등이 다 인재불사다. 86년 홍성교도소 종교위원으로 시작한 재소자 교화사업은 재소자뿐 아니라 재소자 가족까지 챙김으로써 불교 자비의 큰 산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정명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